고대사

테넨티스모: 브라질 제1공화국에 맞선 청년 장교들의 반란

테넨티스모(Tenentismo)는 브라질군 장교들이 제1공화국의 정책에 맞서 싸운 정치·군사 운동이다.

테넨티스모: 브라질 제1공화국에 맞선 청년 장교들의 반란

테넨티스모는 브라질 군부 내부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제1공화국 시기의 정치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운동은 하급 장교들의 참여가 특징이었으며, 1920년대 내내 여러 차례에 걸쳐 기성 정부에 대한 무장 투쟁을 벌였다.

테넨티스모란 무엇인가?

테넨티스모는 브라질 육군의 젊은 하급 장교들이 조직한 정치·군사 운동으로, 제1공화국의 정치 체제에 반대했다. 이 운동은 브라질 정치의 흐름과 과두세력(올리가르히)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중위들('리우텐트')이 주축이 되었다.

회고적으로 볼 때 1920년대는 제1공화국의 위기 국면으로 평가된다. 테넨티스모의 등장은 이 체제의 붕괴를 한층 가속화했다. 모든 것은 1922년 아르투르 베르나르데스와 닐루 페사냐 간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아르투르 베르나르데스의 후보 출마는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 과두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닐루 페사냐의 후보는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정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여러 소규모 과두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닐루 페사냐의 선거 캠페인은 '공화국 재건(Reação Republicana)'이라 불렸으며, 도시 중산층의 표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열었고, 인플레이션 확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커피만 편애하는 대주(大州)들의 행보에 반대하며 다른 국산품에도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닐루 페사냐 정치 어젠다의 구성에는 히우그란지두술 과두세력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바로 이 선거 과정에서 아르투르 베르나르데스와 브라질 육군 하급 장교단 사이의 관계가 균열되기 시작했다. 1921년 10월, 베르나르데스가 군인들을 비방한 것으로 알려진 가짜 서한이 공개되었다. 곧이어 해당 서한이 위조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군과 베르나르데스의 관계는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군사클럽(Clube Militar)이 현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자, 에피타시우 페소아 정부는 군사클럽 폐쇄와 에르메스 다 푼세카의 투옥을 명령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과두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테넨티스모가 탄생하게 되었다.

테넨티스모는 1922년부터 1927년까지 활동했으며, 이 기간 동안 '테넨티스타 봉기'로 불리는 일련의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다. 첫 번째 주요 반란은 군사클럽 폐쇄 몇 주 후에 발생했다. 이것이 바로 1922년 7월 5일에 일어난 코파카바나 요새 반란(Revolta do Forte de Copacabana)이다.

이 시기의 다른 운동으로는 마나우스 코뮌과 이시도루 디아스 로페스가 이끌고 미겔 코스타가 지원한 1924년 상파울루 반란이 있다. 1924년 상파울루 반란의 전개 과정에서 상파울루의 반군 중위들이 히우그란지두술의 반군 중위들과 합류하며 코스타-프레스 종대(Coluna Prestes)가 탄생했다.

종대는 리우텐트들이 일으킨 최대 규모의 반란으로, 아르투르 베르나르데스와 워싱턴 루이스 정부 시기인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진행되었다. 종대 부대는 25,000km 이상을 행군하며 브라질 12개 주를 횡단했고, 때때로 연방군 소규모 부대와 교전하기도 했다. 종대는 1927년 볼리비아로 망명하면서 해체되었다.

리우텐트들의 이상은 무엇이었나?

이념적으로 리우텐트들은 제1공화국의 기존 체제에 대한 반대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브라질 정치에서 과두세력의 지배에 강하게 반대했는데, 과두세력의 통제—특히 농촌 지역에서의 통제—가 국가의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들은 리우텐트들을 구세주주의자(salvationist)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과두지배층과의 싸움 속에서 스스로를 공화국의 구원자로 여겼다. 군인들의 불만은 정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군부 자체에 대한 '투자 부족'에 대한 불만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리우텐트들의 행동은 정치 개혁과 군 조직 자체의 변화를 모두 추구했다.

테넨티스타 이념의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1889년 이후 브라질에 시행되어 온 연방제에 대한 비판이다. 테넨티스타들은 연방제가 정치적 분절을 낳고, 이것이 지역 정치 세력의 강화를 허용했다고 보았으며, 이를 브라질 공화국의 가장 큰 악으로 간주했다.

테넨티스타들은 대체로 브라질에 자유주의 원칙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리우텐트들 내면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들에게 자유주의 원칙은 경제적 문제로 축소되었고,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적 공화국의 강요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자유의 수호를 내세우는 자유주의 원칙 그 자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테넨티스타 운동이 대체로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나 좌파 성향의 정책을 옹호하는 인사들도 일부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제 분야에서 리우텐트들의 제안은 경제의 현대화와 산업화를 통해 브라질의 경제 발전을 실현하자는 것이었으며, 특히 커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또한 교육 제도와 선거 제도의 개혁을 제안했으며, 브라질에 만연한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리우텐트들의 활동은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들의 이념을 관철시키거나 권력 장악을 계획하는 구체적인 정치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우텐트들의 행동은 조직된 담론보다는 행동—여러 차례의 반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을 통해 전개되었다. 당시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리우텐트들은 제1공화국을 종식시킨 쿠데타인 1930년 혁명에 직접 개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