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하스드루발의 영지와 한니발의 부상 (221)

하스드루발의 영지와 한니발의 부상 (221)

기원전 221년, 하스드루발이 죽자 카르타고 군은 즉시 후계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논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젊은 한니발을 사령관 진영으로 모셔 가 만장일치의 환호와 함께 그를 새 장군으로 추대했고, 이 결정이 곧 민회의 표결로 공식 비준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니발은 갓 성년에 이른 나이였음에도, 이미 하스드루발의 소환 서신을 받아 스페인으로 불려간 뒤였습니다.

원로원을 갈라놓은 논쟁

이 안건을 두고 열린 원로원 심의에서 바르카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은 한니발의 임명을 강력히 밀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명확했습니다. 한니발이 무인의 길에 하루빨리 익숙해져 아버지가 쌓아 놓은 권력의 유산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대파의 영수 한노가 기립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께 올려진 이 요청은 지극히 정당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애매모호한 태도는 순식간에 회의장 전체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한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스드루발은 젊은 날 아버지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은 은혜를, 이제 그 아들에게서 되돌려받을 만큼 충분한 권리를 지녔다고 믿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우리 장군들의 변덕에 좌우되어 온 군대를, 이제 마치 세습 재산이나 다름없이 한 소년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 옳습니까? 혹시 우리는 아밀카르의 아들이 아버지가 행사하던 절대 권력, 곧 왕권의 실체를 너무 늦게야 보게 될까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까?”

“더 나아가 그 군주의 사위가 세습적 권리에 근거해 우리 군대를 지휘하게 된다면, 그 아들의 왕환이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는 일이 과연 너무 늦을까요? 이 젊은이를 카르타고에 머물게 합시다. 법률과 관리들에게 복종하는 가운데 평등의 품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제 소견입니다. 이 희미한 불씨가 언젠가 거대한 화염으로 번질 것을, 우리는 미리 경계해야 합니다.”

한노의 이 경고는 훗날 한니발이 로마와의 대결 끝에 카르타고를 몰락의 위기까지 몰고 가게 될 운명을 앞세워, 마치 예언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당시 원로원의 분위기는 이미 바르카 가문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한니발의 지명은 저항 없이 확정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