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하밀카르 바르카의 죽음(기원전 229년): 하스드루발의 권력 승계

하밀카르의 죽음(기원전 229년)과 하스드루발의 집권

근심과 회한에 시달리던 하밀카르는 로마와 강화를 맺은 직후, 카르타고의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5년간, 이어서 히스파니아에서 9년간 전쟁을 벌였다. 그가 더욱 중대한 원정을 계획하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그의 생애가 더 길었다면, 카르타고인들은 그의 지휘 아래 훗날 그의 아들이 감행했던 이탈리아 전쟁을 먼저 벌였을 것이다. 그 전쟁이 연기된 것은 오직 하밀카르의 죽음과 한니발의 어린 나이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의 8년에 달하는 공백은 하스드루발의 권위로 메워졌다. 처음에는 젊음의 꽃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를 눈여겨본 하밀카르의 총애를 받았고, 뛰어난 자질 덕분에 사위가 된 그는 병사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바르키노스 파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귀족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국의 유일한 실권자로 군림했다.

무장보다는 정치에 더 뛰어났던 하스드루발은 아프리카의 소군주들에게 환대를 베풀어 군주들을 통해 백성들의 애정을 얻었으며, 이처럼 전쟁과 무력만큼이나 외교적 수완으로도 카르타고의 세력을 확장했다. 그는 또한 해안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곳이 훗날 카르타고 노바(현 스페인 카르타헤나)라 불리며 히스파니아 통치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평화는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자신의 주인을 살해한 것에 분노한 야만인 한 명이 호위병들 사이에서 그를 암살했다. 현장에서 즉시 붙잡힌 그 암살자는 마치 성공적으로 도망친 듯한 만족한 표정을 지었으며, 고문으로 온몸이 찢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기쁨이 고통을 이기는 듯한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고, 심지어 집행자들을 향해 미소 짓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고 전해진다.

민중을 포섭하고 자신의 법률에 복종시키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하스드루발의 능력은 로마인들로 하여금 그와 동맹 조약을 갱신하게 만들었다. 그 조건은 에브로 강이 두 세력의 경계선이 되고, 두 세력 사이에 위치한 사군툼은 자유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