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툼의 종말 (기원전 218년 3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군툼(Saguntum) 공방전. 로마의 동맹 도시였던 이곳이 한니발의 군대에 포위된 지 여덟 달, 도시의 최후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알로르쿠스가 연설을 이어가는 사이, 군중은 어느새 회의장 깊숙이 밀려들어 시민들이 원로원 의원들과 뒤섞여 있었다. 그러던 중 핵심 인사들이었던 원로원 의원들은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 채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포럼에 모여 공공 건물과 개인 가옥에 있던 금과 은을 모조리 걷어 모았고, 급히 쌓아 올린 화퇴 위에 그것들을 던져 넣은 뒤, 대부분은 스스로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 처참한 광경이 온 도시에 경악과 공포를 번지게 하던 그때, 성채 쪽에서 새로운 소란이 울려 퍼졌다. 오랜 공격에 시달리던 탑 하나가 드디어 무너져 내렸고, 카르타고군 한 부대가 잔해 틈으로 돌진해 한니발에게 도시에 더 이상 초소도 파수병도 남아 있지 않다고 알렸다. 더없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한 한니발은 즉시 전 병력을 이끌고 진격했고, 순식간에 도시는 함락되고 말았다.
한니발은 무기를 들 수 있는 나이의 남자는 모두 검살하라고 명령했다. 잔혹한 조치였지만, 그 결과는 이를 정당화한다. 집안에 처자식과 함께 갇힌 채 스스로 불을 질러 죽음을 택하는 자들을, 또 무기를 쥔 채 마지막 숨통이 끊길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 자들을 대체 어떻게 살려 둘 수 있겠는가?
약탈과 전리품
함락된 도시에서는 막대한 전리품이 쏟아져 나왔다. 주민들이 미리 보물 대부분을 파괴해 버린 것은 헛수고에 그쳤다. 분노에 사로잡힌 정복자의 검은 늙고 어림을 가릴 여지조차 거의 두지 않았고, 포로들은 곧바로 병사들의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포로 매각으로 거둔 값은 적지 않은 액수에 달했으며, 수많은 사치품과 귀중한 직물들은 카르타고로 운반되었다.
8개월의 공성전과 연대기의 모순
일부 역사가들은 사군툼 공성전이 8개월간 이어졌다고 기록한다. 그들은 또 한니발이 이후 카르타헤나(신카르타고)로 옮겨 월동했으며, 그곳을 출발한 지 5개월 만에 이탈리아 땅에 도착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만약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모순이 생긴다.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가 공성전 초입에 사군툼 사절단을 접견하는 한편, 같은 임기 안에 한니발과 교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은 티키누스 강 근처에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함께 트레비아 강변에서 싸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들의 전개가 실제보다 훨씬 빨랐거나, 아니면 공성전의 '시작'이 아니라 '함락'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가 집정관에 취임한 해의 첫날로 잡아야 한다. 트레비아 전투를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의 집정관 해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플라미니우스는 트레비아 전투 후 집정관 선거를 위해 로마에 들렀다가 다시 겨울 주둔지의 군대로 돌아간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의 지명을 받아, 아리미눔에서 집정관직을 인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