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수복과 로마군의 압박
같은 밤과 다음 날에 걸쳐, 포위당한 카르타고인들은 자신들의 성벽을 보수하고 곳곳에 탑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탑들 맞은편에 흙으로 토루를 쌓아 올렸고, 병사들은 그 위에서 유황과 피치, 불붙은 나무 조각을 가득 담은 단지를 던져 넣었습니다. 결국 카르타고인들은 첫 번째 성벽을 내주어야 했고, 로마군은 부두 지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이어서 로마군은 대외곽 성벽 근처에 같은 높이의 벽돌 성벽을 하나 더 축조했습니다. 이제 이 벽 위에서 발사되는 화살과 투사물은 시내 깊숙이까지 닿았습니다.
하스드루발의 강화 교섭 시도
포위망은 날로 좁혀져 갔습니다. 기원전 147년 말, 평화를 얻고자 했던 하스드루발은 누미디아 왕 굴루사와의 면담을 요청합니다. 이 장면을 기록한 폴리비오스는 카르타고 사령관을 조롱조로 그립니다. 절제의 본보기가 되기는커녕 몸집이 크고 뚱뚱했던 그가 예장용 망토를 걸치고 누미디아 장군에게 다가가, 스키피오에게 도시를 살려달라고 부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천진난만한 생각인가! 로마군이 이미 육지와 바다에서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데, 군세가 온전할 때 그들이 거절했던 것을 지금 받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단 말인가?" 굴루사는 이렇게 일축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신들의 도움과, 아직도 네페리스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포에니 군대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굴루사는 스키피오에게, 향방을 헤아릴 수 없는 이 전쟁을 끝내라고 권했습니다. 로마 사령관은 답했습니다. "그래, 우리 포로들을 그렇게 비천하게 대우한 그 사람이 하는 말이란 말인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 뒤에도 신들이 자신을 돕기를 바란다고?" 그럼에도 스키피오는 도시가 항복하면 하스드루발 본인과 아내, 자녀, 친척 열 가문을 구제하고, 노예 백 명과 재산 일부를 챙겨 나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조건을 전하게 합니다. 그러자 하스드루발은 오만하게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태양빛을 보면서 카르타고가 불타는 광경을 함께 목격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
네페리스 공략과 저항의 와해
스키피오는 드디어 교외 지역에 아직 남아 있던 포에니 잔존 부대를 일소하기로 결심합니다. 기원전 147년부터 146년에 걸친 겨울 동안 여러 파견대를 보내 이들과 싸우게 하고, 저항의 중추였던 네페리스를 포위하기로 합니다. 동맹군 굴루사가 적군에 큰 타격을 입히는 승리를 거둔 뒤, 스키피오는 마침내 그 도시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치러진 22일간의 공성전은 참으로 고단한 것이었습니다.
이 원정의 성공은 카르타고의 마지막 동맹세력들마저 낙담시켰습니다. 도시로는 더 이상 보급선이 닿지 않았고, 아무도 도울 수 없게 된 많은 주민들은 굶어 죽거나 적진으로 항복해 가고 있었습니다.
최후의 준비와 데보티오 의식
이론적으로는 기원전 147년 11월 로마에서 선출된 새 집정관이 스키피오를 대신하여 아프리카군의 지휘권을 넘겨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집정관은 원로원과 마찬가지로 스키피오가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로마 장군은 기원전 146년 좋은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봄이 오자 드디어 승부를 내기로 결정합니다.
전투에 앞서 스키피오는 관례에 따라 전군이 모인 앞에서 적의 신들에게 연설을 올렸습니다. "만일 어떤 신이든, 어떤 여신이든 카르타고의 백성과 도시를 맡고 있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간구하며 애원하고 청합니다. 저 도시와 신전과 성역을 떠나 물러나 주고, 그것들을 버리고 로마로 와 나와 내 가족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그가 말하는 동안 제물의 목이 잘리고 내장이 검열되었는데, 하루스펙스(간장 점술사)들은 그 안에서 불길한 징조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스키피오는 조국의 지하 신들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이 카르타고의 도시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군대 안에 도망과 공포, 전율과 역병을 퍼뜨리라. 저 적들이 그들의 도시와 밭과 함께 그대들에게 격파되어 하늘의 빛을 잃게 하라."
이처럼 공격 전에 '데보티오(devotio)' 의식의 대상이 된 적의 도시는 필연적으로 완전한 파괴를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스키피오는 이를 통해 군단병들에게 약탈이 허용될 것임을 암시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강력한 촉매제였습니다.
항구 함락과 텅 빈 시장터
결정적인 총공격은 지난해 확보했던 부두 지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방비가 허술했고 병사들은 굶주림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항구는 비교적 쉽게 함락되었고, 로마군은 도시로 통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광장, 즉 시장터로 진입했습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밤이 찾아오자 스키피오는 진격을 다음 날로 미루기를 택합니다.
바로 근처에는 '살람보의 토펫(Tophet)'이 있습니다. 이곳은 카르타고인들이 가나안인들에게서 물려받은 관습에 따라 맏아들의 유해를 담은 단지를 안치하던 묘지였습니다. 이곳 인근에는 수많은 포에니 성역이 있었는데, 그중 아폴로에게 바쳐진 한 신전은 벽이 금판으로 덮여 있었고, 이를 알지 못한 군단병들이 스스로도 경배하는 신의 성역을 더럽혔음을 모른 채 통째로 약탈해 버렸습니다.
비브사로 이어지는 처절한 시가전
도시 하단에서부터 좁은 대로 세 개가 시작됩니다. 다층 주택들이 늘어선 이 거리들은 도시의 심장부인 비브사(Byrsa) 성채로 가팔라지게 오르며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피아노스가 상세히 기술한 끔찍한 전투가, 집 한 채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시작됩니다. 모든 창문과 지붕에서 투사체가 우박처럼 쏟아졌고, 끓는 물통까지 떨어져 로마군은 극히 느리게만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집 한 채를 통째로, 조금씩 뜯어내듯 점령해야 했습니다. 건물 꼭대기에 오른 병사들은 거리 위로 서까래를 뛰워 반대편 건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는 지하실부터 다락방까지 사방에서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습니다. 시체들이 허공으로 떨어져 하늘로 치켜든 창과 검에 꽂히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군단병들은 혼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성채에 당도했고, 스키피오는 세 개의 거리를 불태우고 병력의 통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폐허를 평평하게 밀어버릴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아직 서 있는 벽들이 잇달아 헐려 내려갔습니다. 수많은 시신이 돌과 함께 무너져 내렸지만, 그 속에는 불행한 사람들의 몸도 섞여 있었습니다. 다친 채 반쯤 타버린 자들, 노인, 여인, 아이들이었고, 그들의 신음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처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