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트라와 미트라교: 빛의 신 숭배와 기독교에 남긴 흔적

미트라는 누구인가?

미트라(Mithra) 또는 미트라스(Mithras)는 인도·이란 계통(인도이란족)의 신으로, 물과 다산의 여신 아나히타(Anahita)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숭배는 로마 제국에서 절정에 달했으며, 특히 서기 3세기경 로마 전역으로 퍼지며 하나의 종교적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미트라교는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와 가장 강력하게 경쟁하던 종교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군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병사들은 미트라를 용기와 충성, 승리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러한 인기 때문에 두 종교 간에는 치열한 경쟁과 대립이 벌어졌고,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2월 25일 성탄절의 기원과 미트라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배경에는 미트라 숭배가 자리하고 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가 이교(異敎)의 미트라 숭배에 수많은 양보를 해야 했던 결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이교 시대의 로마에서는 12월 17일부터 로마력 새해 첫날인 '칼렌다에(Calendae)'까지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축제 기간 중 하나인 '나탈리스 인빅티(Natalis Invicti)', 즉 '무적의 태양의 탄생일'은 바로 빛의 신 미트라를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미트라는 순수와 정결을 상징하며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동지에 해당하는 12월 25일, 사람들은 어린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통해 '무적의 태양(Dies natalis solis invicti)' 미트라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황소 숭배의 깊은 뿌리

미트라교는 입신식(입문 의식)을 통해 비전(秘傳)을 전수하는 밀교 종교였으며, 그 중심에는 황소 숭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황소 숭배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어, 구석기 시대 후기(상부 구석기) 혹은 에피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페인과 히스패닉 문화권에서 이어지는 투우는 바로 이 고대 황소 숭배의 먼 잔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암벽에서 태어난 신, 타우로크토니

미트라는 동굴의 암벽에서 스스로 태어난 존재로, 최초의 신이자 스스로를 낳은 자, 즉 '자생신'으로 묘사됩니다. 그의 첫 번째 위업은 '타우로크토니(Tauroctony)', 곧 태어나자마자 맹렬하고 강력한 황소를 제압한 것이었습니다. 미트라가 무릎을 꿇고 황소를 찌르는 장면은 미트라교 유적에서 발견되는 가장 대표적인 부조(浮彫) 주제입니다.

피의 세례 — 입신 의식

입신 의식에서 신도들은 친교의 잔치(아가페)를 통해 제물로 바쳐진 황소의 피를 뿌리고, 서로에게 이마와 손등에 재로 십자가를 그려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비 참여자가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고, 그 위에서 황소를 도살하여 피가 그의 몸에 쏟아지게 하는 방식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의식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은밀한 장소에서 거행되었으며, 가능하면 동굴을 선호했습니다. 실제로 로마 제국 곳곳에서 발굴된 미트라 신전(미트라움, Mithraeum)은 대부분 지하 또는 동굴을 본뜬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프리메이슨과 기독교에 남긴 영향

일각에서는 프리메이슨(Freemasonry)의 많은 의례와 신화가 미트라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보기도 합니다. 나아가 미트라 숭배가 기독교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두 종교는 구원의 약속, 세례 의식, 공동체의 연회 등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결론은 아니지만, 미트라교가 고대 후기 종교사에 끼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