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파우사니아스: 플라타이아의 영웅에서 배신자로 몰락한 스파르타 장군

파우사니아스(고대 그리스어: Παυσανίας, 사망 기원전 469년)는 스파르타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지휘하며 위대한 명성을 얻었으나, 끝내 배신자라는 오명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입니다.

아기아드 왕가의 섭정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 두 왕조 중 하나인 아기아드 왕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클레옴브로토스 1세의 아들이자, 테르모필레 전투의 영웅 레오니다스 1세와 클레오메네스 1세의 조카였습니다. 레오니다스 1세의 아들인 사촌 플레이스토아르코스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파우사니아스는 스파르타의 섭정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기원전 479년, 그는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기원전 479년부터 477년까지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들을 해방시키고, 키프로스를 탈환한 뒤 비잔티움(오늘날 이스탄불)까지 점령하며 동방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권력에 취해 몰락하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파우사니아스는 포악하고 오만한 통치 방식으로 인해 그리스인들의 증오를 사게 되었고,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마저 받게 됩니다. 이에 스파르타는 그를 강제로 소환했고,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석방된 후 그는 다시 비잔티움으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공식 지위가 아닌 단순한 모험가의 신분이었습니다. 기원전 472~471년경 아테네의 장군 키몬이 그를 도시에서 축출하자, 파우사니아스는 트로아드 지역에 자리를 잡고 페르시아와의 밀통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당시 델로스 동맹을 바탕으로 급부상한 아테네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면서도, 파우사니아스는 원거리 원정에 부정적이고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 정세와 라이벌 아르고스의 부상을 더 걱정하던 스파르타의 보수파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시 스파르타로 소환된 그는, 자신의 음모를 에포로이(감독관)에게 고발한 하인의 배신으로 치명적인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신전 안에서의 최후

체포를 피해 파우사니아스는 아테나 칼키오코스 신전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에포로이들이 그의 운명을 어떻게 처리할지 망설이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어머니 테아노는 신전 문 앞에 벽돌 하나를 놓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디오도로스 시켈로스, 『역사총서』 XI, 45, 6). 이는 아들을 버렸다는 뜻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이에 결심이 굳어진 에포로이들은 신전 문을 벽으로 봉쇄하기로 했습니다. 파우사니아스는 기원전 469년경, 자신의 고향에서 신성한 장소 안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플라타이아의 구국영웅이 저지른 배신의 대가는, 역사상 가장 잔인할 만큼 상징적인 형태로 치러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