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르카시벨라우노스: 알레시아 구원군을 이끈 갈리아 귀족

베르카시벨라우노스는 누구인가

베르카시벨라우노스(Vercassivellaunos)는 아르베른(Arvernes) 출신의 갈리아 귀족으로, 유명한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의 사촌이었다. 그의 이름은 사촌의 이름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조 접두사 'ver-' 뒤에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되는 갈리아 이름이 이어진다. 이 이름인 카시벨라우노스(Cassivellaunos)는 '지휘관'을 뜻하는 '벨라우노스(Vellaunos)'와 '전투'를 의미하는 '카투(catu)'와 연결되는 '카시(cassi)'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베르카시벨라우노스는 '전투의 최고 지휘관'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알레시아 포위전과 구원군 지휘

그는 기원전 52년 갈리아 봉기 당시의 갈리아 지도자 중 한 명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기록을 통해 알려져 있다. 알레시아 공방전이 시작된 후, 그는 반란에 동참한 갈리아 족장들의 회의에서 아트레바테스족의 콤미오스(Commios), 아에두이족의 비리도마루스(Viridomaros)와 에포렛도릭스(Eporedorix)와 함께 구원군 지휘관으로 선출되었다(카이사르, BG, VII, 76, 3).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아에두이 영토에서 소집된 기병 8,000명과 보병 14만 명을 이끌었으며, 이 구원군의 목표는 알레시아의 포위망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공격 당시 베르카시벨라우노스는 가장 용맹하기로 명성 높았던 도시들에서 선발된 6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기습 공세를 지휘했다(BG, VII, 83). 그의 공격 대상은 산악 지대, 즉 몽 레아(Mont Réa)였으며, 이는 로마군 방어선의 결속력을 크게 위협했다. 카이사르는 부관 라비에누스(Labienus)와 6개 코호트를 현장에 파견한 뒤 직접 전장으로 향했다. 카이사르 기병대의 도착으로 베르카시벨라우노스의 군대는 완패했고, 그는 도주를 시도하던 중 로마군에게 생포되었다(BG, VII, 88).

라비에누스 진영 확인과 새로운 통찰

'T(itus) LABI(enus)'라는 각인이 새겨진 투석용 탄환 덕분에 알리즈(Alise)의 C진영이 라비에누스의 진영임이 확인되었고, 이를 통해 최근 이 전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시(Bussy) 산에 진영을 설치한 라비에누스는 몽 레아 전체는 물론, 갈리아군이 모습을 드러낸 배후 사면까지 직접 조망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근접한 부관이면서 동시에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화폐와 후대의 평가

VERCA 문양이 새겨진 아르베른 화폐는 종종 베르카시벨라우노스에게 귀속되어 왔으며, 상당수가 게르고비아(Gergovia) 오피둠 고원에서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 화폐들이 실제로는 후대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의 후손 중 한 명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르카시벨라우노스와 구원군의 실패는 알레시아와 그의 친척인 베르킨게토릭스의 항복을 앞당겼다. 베르킨게토릭스 가문의 완전한 몰락 이후, 아르베른에서는 에파스낙토스(Epasnactos)와 같은 카이사르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