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베티족(Helvetii)은 오늘날 스위스 지역에 정착했던 켈트 또는 게르만-켈트 계통의 부족 연합으로, 라인강 서쪽에 살던 게르만 부족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킴브리 전쟁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가 1858년에 그린 「멍에 아래로 지나가는 로마인들(The Romans Passing Under the Yoke)」은 아쟁 전투에서 헬베티족이 로마군을 격파한 승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 왼쪽에는 검을 든 지도자 디비코(Divico)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헬베티족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킴브리 전쟁(Cimbrian War) 시기입니다. 이들은 킴브리족, 암브론족, 튜턴족과 함께 디비코가 이끄는 티구리니(Tigurini) 부대를 앞세워 나르본 갈리아를 침공했습니다. 기원전 107년 아쟁 전투에서 루키우스 카시우스(Lucius Cassius)가 이끄는 로마군을 물리치며 승리를 거두었고, 기원전 105년에는 오랑주에서도 두 번째 승리를 거든했습니다. 다만 티구리니 부대는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에게 패배하기 전인 기원전 102년과 101년경에 이미 분쟁에서 철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갈리아 전쟁
헬베티족은 갈리아 전쟁의 발단을 여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왕 오르게토릭스(Orgétorix)의 주도 아래 자신들의 영토를 불태운 뒤 생통주(Saintonge) 방면으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한 것입니다. 이 이주의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게르만족의 압력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설과, 인구 증가나 경제적 사정 등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는 설이 공존합니다.
헬베티족 연합은 베르비게네스(Verbigènes), 티구리니(Tigurins), 투게네스(Tugènes)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게르만계 부족인 툴링게스(Tulinges)와 라토브리케스(Latobrices), 그리고 켈트계 보이족(Boii)도 합류했습니다. 암브론족('amba', 작은 강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의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기원전 58년 소네(Saône) 강변의 세콰니(Séquanes) 영토에서 처음으로 이들을 마주쳤고, 이후 디비코가 이끄는 헬베티족과 비브락테(Bibracte) 전투에서 격돌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전투 개시 당시 헬베티족이 무려 368,000명(전사 92,000명 포함)에 달했으며, 전투가 끝난 후에는 110,000명으로 줄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헬베티족은 결국 패배하여 밀려났지만, 보이족은 갈리아에 남아 아에두이(Aedui)족과 아르베르니(Arverni)족 사이에 정착했습니다. 한편 로마 입장에서는 라인강 너머의 게르만족이 나르본 변경에 정착해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사건은 로마가 갈리아 내륙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52년에는 헬베티족이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를 지원하기 위해 1만 명 규모의 병력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