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영국의 진격과 프랑스 동맹, 미국 독립전쟁의 최종 승리

영국의 진격과 프랑스 동맹, 미국 독립전쟁의 최종 승리

영국군의 진격과 워싱턴의 고전

1776년 8월 롱아일랜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영국군은 리처드 하우(Richard Howe)의 지휘 아래 같은 해 9월 뉴욕 시를 점령했습니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이끄는 대륙군은 뉴저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렌턴 전투(1776년 12월 26일)와 프린스턴 전투(1777년 1월 3일)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1777년 가을에는 필라델피아가 영국군에게 함락되었고, 의회는 인구의 약 3분의 2와 함께 도시를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워싱턴은 펜실베이니아에서 벌어진 브랜디와인 전투와 저먼타운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했고, 밸리포지(Valley Forge)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뉴욕주에서 벌어진 새러토가 전투를 계기로 전세가 반전됩니다. 영국군 사령관 존 버고인(John Burgoyne)은 1777년 10월 17일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미국의 결정적 승리는 프랑스가 반란군 측에 서서 전쟁에 참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미국 동맹의 체결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외교적 노력 덕분에 1778년 2월 6일 파리에서 프랑스와 미국 간의 동맹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이 기회를 통해 오랜 숙적인 영국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후 스페인이 1779년 5월 동맹에 합류했고, 1780년에는 네덜란드 연합공화국이 뒤따르며 전쟁의 국제적 성격이 더해졌습니다.

전황의 기복

1778년 6월 18일, 영국군은 프랑스의 해상 개입 위협에 직면한 뉴욕 방어에 집중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서 철수했습니다. 이후 벌어진 몬머스 전투(뉴저지, 1778년 6월 28일)는 미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1779년부터 영국군은 남부 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지아의 서배너(Savannah)가 점령되었고, 프랑스-미국 연합군이 조직한 공성 작전도 1779년 10월 9일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780년 5월부터 1781년 9월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일련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찰스턴 함락(1780년 5월 12일)과 캠던 전투(1780년 8월 16일)에서는 영국군이 우위를 점했지만, 킹스마운틴 전투(1780년 10월 7일)와 유토 스프링스 전투(1781년 9월 9일)에서는 미국군이 승리하며 판세가 오갔습니다.

요크타운의 패배와 전쟁의 종결

1781년 10월 버지니아 요크타운(Yorktown)에서 영국군이 패배하면서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 마련되었습니다. 영국 하원은 1782년 2월 27일 전쟁 종결을 의결했고, 노스 경(Lord North) 총리는 같은 해 3월 20일 사임했습니다. 영국군은 1782년 7월 11일 서배너에서, 그리고 12월 14일 찰스턴에서 철수했습니다.

이후 영국과의 협상이 시작되어 1782년 11월 30일 잠정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1783년 9월 3일 서명된 파리 조약은 적대 행위를 공식적으로 종결시켰으며, 미시시피 강까지를 국경으로 하는 미국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습니다. 아울러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영국과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 간의 분쟁도 함께 해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