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아메리카(스페인령 아메리카)의 독립은 19세기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유럽에서 일어난 혁명과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글: 클라우디우 페르난데스(Cláudio Fernandes)
유럽의 격변이 만든 독립의 배경
히스패닉 아메리카의 독립 과정은 약 4세기에 걸친 식민 지배 이후인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복잡한 사건들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19세기 초 유럽 대륙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혼란의 주된 원인은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과 그에 뒤이은 나폴레옹 제국의 성립이었습니다.
히스패닉 아메리카의 종주국이었던 스페인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모국의 정치적 혼란은 식민지 곳곳에서 봉기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몽사상과 초기 독립 운동
외부 요인뿐 아니라 내부 요인 역시 독립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절대왕정과 중상주의에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내세운 계몽사상에서 영감을 얻었듯이, 히스패닉 아메리카의 초기 독립 운동 또한 같은 사조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1780년 페루에서 일어난 투팍 아마루 반란과 1781년 누에바그라나다에서 벌어진 코무네로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 봉기는 스페인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그 선구적 정신은 이후의 독립 운동에 강력한 자극과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크리오요와 차페톤: 식민지 사회의 갈등
스페인 식민지의 정치 구조는 식민지 출생 스페인인 후손, 즉 크리오요(criollos)에게 크게 불리했습니다. 식민지에 거주하며 정치·행정 전반을 장악한 본토 출신 스페인인 차페톤(chapetones)과 달리, 크리오요는 정치적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차페톤 패권에 대한 불만은 결국 크리오요 엘리트를 독립 전쟁의 주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엘리트의 지도자 가운데는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베르나르도 오히긴스(Bernardo O'Higgins), 호세 수크레(José Sucre) 등 네 사람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히스패닉 아메리카 해방 전쟁을 이끈 공로로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불립니다.
몬테아구도와 계몽사상의 확산
독립 봉기 지도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정치 선동가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베르나르도 몬테아구도(Bernardo Monteagudo)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가 1809년에 발표한 소책자 『샹젤리제에서의 아타왈파와 페르난도 7세의 대화』는 히스패닉 아메리카에 계몽사상을 널리 퍼뜨린 핵심 텍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역사가 마리아 리지아 코엘류 프라두(Maria Lígia do Coelho Prado)는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이것은 19세기 첫 10년 동안 히스패닉 아메리카를 휩쓴 수많은 소책자 중 하나로, 계몽사상을 확산시키고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위해 싸우기 시작한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거를 제공했다. 크리오요들이 생산한 이러한 '전복적' 텍스트는 유럽에서 들어온 독서와 식민지 상황에서 비롯된 독자적 성찰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
[1] PRADO, Maria Ligia Coelho. 『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에 나타난 급진적 희망과 보수적 환멸』, History, 상파울루, 22(2), 2003, 20쪽.
1820년대: 독립의 완성
1820년대는 독립 전쟁의 결정적 국면이었습니다. 점차 옛 스페인 식민지 거의 전역이 해방되었으며(1898년에야 독립한 쿠바는 예외), 이 독립 과정은 히스패닉 아메리카와 직접적인 교역 관계를 맺고자 했던 영국 제국과 미합중국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