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코바의 부상
모스코바(모스크바 대공국)는 17세기를 거치며 정치·경제·문화 전반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이 시기 러시아는 영토를 크게 넓히는 한편, 독특한 통치 체계를 다지고 서구식 예술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 그 핵심에는 젬스키 소보르라는 전국 회의, 시베리아 개척, 그리고 예술의 서구화가 자리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통치 기관: 두마와 젬스키 소보르
두마(Duma)는 오랜 역사를 지닌 귀족 평의회로, 보야르(대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의 모든 중대사를 처리하는 기관이었다. 두마에 속한 보야르들은 군주의 결정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밝히는 역할을 맡았다.
젬스키 소보르(Zemsky Sobor)는 이반 4세, 즉 '참주 이반'이 처음 소집한 신분 대표 전국회의다. 특히 1613년에는 이 회의가 미하일 로마노프를 차르로 선출하며 로마노프 왕조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젬스키 소보르는 차르의 명에 따라 해결해야 할 중요한 현안이나 논의할 사안이 있을 때마다 소집되었으며, 성직자와 보야르, 도시민은 물론 경우에 따라 농민까지 포함된 200명에서 500명 규모로 구성되었다.
미하일 로마노프는 젬스키 소보르를 가장 자주 활용한 군주였다. 아조프 함락 문제나 코사크가 모스코바의 보호를 요청했던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할 때가 대표적인 예다. 권력 구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젬스키 소보르는 끝내 군주제 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전제 정치가 확립되면서 이 기관은 점차 존재 이유와 위상을 잃어갔다. 절대왕정은 국가의 통합과 중앙집권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모스코바를 이루던 작은 도시들과 주변에 편입된 도시들은 저마다의 문화와 전통을 잃고 모스크바의 질서에 동화되어 갔다. 실제로 17세기 러시아는 개방과 팽창으로 크게 성장했으며, 그중에서도 1610년부터 1640년 사이에 진행된 시베리아 확장이 가장 두드러진 성과였다.
모스코바 시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젬스키 소보르는 18세기 러시아 제국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시베리아 확장
모스코바인들에게 시베리아는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땅이었다. 이곳에는 흑담비(소블)를 비롯한 모피용 동물이 풍부하게 서식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 역시 이 교역의 기반을 다지는 데 일조했는데, 모스크바의 지배 아래 들어간 그들은 야삭(yassak)이라 불리는 모피 세금을 바쳐야 했다.
예술과 문학의 변천
리투아니아로 망명한 안드레이 쿠르브스키와 이반 4세 사이의 서신 왕래, 그리고 1672년부터 1675년까지의 감옥 생활 중에 집필한 아바쿰의 자서전 등을 계기로, 17세기에는 러시아어가 본격적으로 문학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예술을 통한 모스코바의 강력한 서구화도 진전되었다.
회화 분야에서는 초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궁정에서는 알렉세이 1세 치세에 연극이 크게 유행했다. 알렉세이 1세는 아내이자 훗날 표트르 대제의 어머니가 되는 나탈리야 나리시키나를 위해 직접 극장을 지어줄 정도였다. 바로 이 표트르 대제가 예술에 매료되어 이를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들여왔고, 이후 많은 외국인들이 유럽을 건너 모스코바로 찾아들었다.
문학에서도 구전과 문어를 아울러 다양한 이야기, 설화, 노래가 문학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셰먀카의 재판(The Judgment of Shemyaka)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형성된 민중 문학의 전통은 훗날 푸시킨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을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