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토마스 빌라레 드 조외즈(Louis Thomas Villaret de Joyeuse, 1748년 5월 29일 오슈 출생 ~ 1812년 7월 24일 베네치아 사망)는 프랑스의 해군 장교이자 제독으로, 프랑스 혁명기를 거쳐 나폴레옹 제정기까지 해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전
그는 처음에 왕실 헌병대에 복무했으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결투를 벌인 뒤 부대를 떠나야 했고, 이후 자원병 신분으로 해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피에르 앙드레 드 쉬프렌(Pierre André de Suffren) 제독 휘하에서 인도 원정에 참전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1783년 7월에는 루이 16세로부터 생루이 훈장 대십자(Grand Cross)를 수여받았고, 1784년에는 함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또한 1785년 3월 7일 베르사유의 생루이 교구에서 거행된 앙드레 드 랑보와 아가트 드 랑보의 결혼식에서 증인을 맡기도 했는데, 이때 첫 번째 증인은 두 사람의 친구였던 피에르 앙드레 드 쉬프렌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
프랑스 혁명이 발발할 당시 '프뤼당트(Prudente)'호의 지휘관이었던 그는 1793년 10월 브레스트 해군 함대의 지휘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곡물 수송선단을 호위·마중하는 임무를 맡아, 1794년 5월 28일과 29일의 해전(소위 '영광의 6월 1일' 전투)에서 호우(Howe)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 맞서 싸웠습니다.
1795년 6월 23일에는 그로아 해전에서 브리드포트(Bridport) 제독에게 패배했는데, 이 전투는 퀴베롱 반도에 망명 귀족들을 상륙시키려는 작전과 연계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모르비앙(Morbihan) 주에서 500인 회의(Council of Five Hundred) 의원으로 선출되어 우파 의석에 앉았으나, 1797년 9월 4일(혁명력 5년 과월 18일)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집정정부와 제정기
1800년 2월 그는 군에 복귀하여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원정 함대의 지휘를 맡았으며, 1802년 4월에는 마티니크(Martinique) 총독(Capitaine Général)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1809년 영국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조사 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이후 다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리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에 새겨져 있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