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 쥐스트(1767~1794)는 프랑스 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로베스피에르의 가장 충실한 동료로, '공포의 대천사(Archangel of Terror)'라는 별명으로 불린 혁명가다.
출생과 성장
니에브르 주 데지즈에서 부르주아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생 쥐스트는 기병 대위였던 아버지를 따라 1776년 블레랑쿠르로 이주했다. 소아송의 오라토리아회 학교에서 수학한 뒤 랭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청년 시절은 순탄치 않아 어머니의 귀중품을 훔쳤다는 혐의로 요양원에서 수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1789년 익명으로 장편 풍자시 오르강(Organt)을 발표해 주목받았으며, 루소, 몽테스키외,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심취했다.
혁명가의 길
혁명이 발발하자 파리로 가서 자코뱅 클럽 모임에 참석하며 혁명 사상에 깊이 몰입했다. 블레랑쿠르 시 비서관과 지방 방위군 중령을 거쳐 1790년 7월 14일 파리에서 열린 연합 축제에 참가했다. 젊은 장교는 로베스피에르를 우상으로 숭배하며 "당신은 한 지방의 의원이 아니라 인류와 공화국의 의원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민공회의 스타
1792년 9월 엔 주에서 국민공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뢰즈와 다비드의 초상화는 곱슬머리와 사색적인 눈빛, 우아한 차림의 매력적인 청년을 보여준다. 맑고 냉철한 지성, 로베스피에르보다 더 단호하고 대담한 의지를 지닌 그는 목적을 위해 장애물을 개의치 않고 돌진하며 로베스피에르를 극단으로 이끌었다. 동료 르바쇠르는 "그가 꿈꾼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십만 명의 목숨도 바쳤을 것"이라고 평했다.
왕정 폐지와 공포정치의 설계자
1792년 11월 13일 국민공회 첫 연설에서 루이 16세 재판 문제를 다루며 탁월한 웅변가로 떠올랐다. "반역죄는 공공 안전의 조치"라며 왕을 시민이 아닌 적으로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화국을 구성하는 것은 그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1793년 4월 헌법 초안 논의에서 콩도르세의 연방제안에 반대하며 주권적 입법부와 민주적 군대를 옹호했고, 그의 견해는 1793년 헌법(제1년 헌법)에 반영되었다.
5월 30일 공안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지롱드파 탄핵 보고서(7월 8일)를 작성·낭독해 그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공안위원회에서 정치와 일반 치안을 맡으며 8월 10일 "평화까지 정부는 혁명적일 것"이라는 혁명 정부 조직 보고서를 통과시켰다.
전장에서의 조직가
위원회 활동과 병행해 군대 사찰관으로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1793년 10~12월 르 바와 함께 라인 군단을 시찰하며 보급과 피복 개선으로 사기를 높이고 엄격한 군율을 확립했다. 민간인에게도 엄격해 과격파(앵라제)를 숙청하고 부유층에 중과세해 슈트라스부르 500만, 낭시 500만 리브르를 징수했다. 그의 노력으로 라인 군단은 비센부르를 탈환하고 란다우를 해방시켰다.
1794년 1월과 6월 북방 군단 사찰에서는 부패·무능 장교를 숙청하고 탈영병을 총살하며 새로운 간부를 양성해 군율과 사기를 회복시켰고, 플뢰뤼스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6월 26일 공회에 승전 보고).
사회 개혁과 숙청의 칼날
1794년 2월 국민공회 의장에 선출된 그는 "방토즈 법안" 보고를 통해 망명자와 그 가족의 재산을 몰수해 빈민에게 분배하는 경제·사회 기반을 마련하려 했다. 동시에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에베르파(3월 14~15일 체포, 24일 처형)와 당통파(4월 재판 중 옥중 음모설 유포로 방어권 박탈) 숙청을 주도했다.
사후 출간된 공화제도에 관한 단상에서는 덕성 있는 농민과 병사가 사는 평등 공화국, 살인자는 평생 검은 옷 착용 후 사형, 60세 무흠자는 흰 스카프 착용, 우정이 없는 자는 추방 등 이상적 사회상을 그렸으며, 어린 시절부터 국가가 교육을 맡는 공교육 개혁안도 구상했다.
테르미도르의 최후
광신적이지만 항상 진지하고 확신에 차 있던 그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1794년 7월 26일(테르미도르 8일) 밤, 이튿날 반대파를 침묵시킬 연설문을 썼다. 그러나 다음 날 단상에서 탈리앵의 방해를 받아 말을 잇지 못한 채 침묵했다.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체포되었다가 코뮌에 의해 풀려났으나, 시청에서 저항 없이 연행되었다. 7월 28일(테르미도르 10일) 여전히 냉정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단두대 행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