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린트록'의 성공, 그리고 '캐치폴' 작전
플린트록(Flintlock) 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미군은 기존에 계획했던 작전 일정을 앞당겨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터너(Turner) 제독은 2월 17일 엔위톡(Eniwetok) 환초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기로 결심했으며, 이 작전에는 '캐치폴(Catchpole)'이라는 코드명이 붙었습니다.
공략 목표는 단 세 개의 섬
작전의 주요 목표는 환초를 이루는 40여 개 섬 가운데 선정된 세 곳이었습니다. 북부의 엔게비(Engebi), 남부의 엔위톡과 패리(Parry)가 바로 그곳입니다. 약 3,500명 규모의 일본군 수비대는 참호와 지하 벙커를 다수 구축해 두었지만, 콘크리트로 만든 견고한 진지는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강습 연대 2개에 더해 제5함대의 지원 부대까지 동원되는 등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아끼지 않았던 캐치폴 작전은, 사실상 콰잘레인 전투의 재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미군은 이미 검증된 전술을 활용해 폭 약 30k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라군 수면으로 함선들을 진입시켰습니다. 사전 포격이 끝난 뒤 강습 부대들은 주변 소규모 섬들을 점령해 강력한 포병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압도적인 화력 지원 덕분에 엔게비는 2월 18일, 불과 몇 시간 만에 함락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엔위톡 섬의 차례였고, 저항은 21일 저녁 모두 진압되었습니다. 마침내 2월 22일, 해병대는 마지막 거점인 패리 섬까지 점령하며 작전을 완수했습니다.
콰잘레인보다 한층 나은 전과
이번 전투의 결과는 콰잘레인 때보다 더욱 좋았습니다. 약 3,400명의 일본군이 현장에서 전사했고, 포로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그 대부분은 한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반면 해병대와 육군의 손실은 전사 350명, 부상 85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길버트·마셜 전역의 결말
이로써 길버트·마셜 제도 전역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성공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미군은 마주로(Majuro), 콰잘레인, 엔위톡에 훌륭한 해군 항공 기지들을 확보하여 중부 태평양을 경유해 일본 본토로 진격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마셜 제도의 잔존 수비대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당한 병력을 묶어 두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항공 전력이 크게 위축되어 있던 대형 거점 트럭(Truk) 기지 역시 미군의 공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해군의 성역으로 불리던 트럭은 더 이상 침입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2월 17일, 제58임무부대(Task Force 58)의 항공모함 부대는 감행된 강력한 공습으로 일본군 항공기 약 260대를 파괴하고, 중순양함 2척, 부순양함 3척, 구축함 4척, 화물선 19척, 유조선 5척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만약 그로부터 며칠 전 고가(Koga) 제독이 주력 전력을 서쪽으로 미리 철수시키지 않았다면, 일본군의 손실은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일본 방어선에 처음 생긴 균열
1944년 2월, 미군은 드디어 일본의 방어 태환선에 최초의 돌파구를 열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쟁의 종식이 이제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