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프랑스를 둘러싼 모든 논쟁 가운데 어느 것보다 중요하고, 복잡하며, 심각했던 것이 바로 '중립 학교(école neutre)'라는 마지막 조항이었다. 단조롭고 행정적으로만 보이는 이 규정 뒤에는, 교회가 당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하나의 철학적 구상, 즉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는 중립적 학교라는 이념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합리적 분업: 학교에서는 세속 과목을, 교회에서는 종교를
레클뤼(Reclus)의 요약에 따르면, 학교의 교사는 교육과정에 포함된 순수하게 세속적인 과목만을 가르치고, 교회의 성직자가 종교를 가르친다. 이른바 합리적 분업이었다.
줄 페리(Jules Ferry)와 폴 베르(Paul Bert)에게 학교에서 종교 과목을 폐지하는 일은 두 가지 양심의 자유, 곧 학부형의 양심과 교사의 양심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 특히 교사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러했다. 페리의 말대로, 자신이 믿지 않는 종교—덧붙이자면 종종 온 힘을 다해 증오하는 종교—를 어떻게 가르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신 없는 학교'인가, '사제와 교리문답 없는 학교'인가
우파는 분개하며 "신 없는 학교!"라고 항의했다. 이에 초등교육국 국장 페르디낭 뷔송(Ferdinand Buisson)은 이렇게 응답했다. "학교는 신 없는 학교가 아니라, 사제와 교리문답 없는 학교다."
신앙의 문제에서 페리는 다수가 소수에 대해 특별한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국민의 절대다수가 믿는 종교라는 이유만으로 가톨릭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를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신교도나 무신론자 같은 소수의 양심의 권리, 그리고 교사 개개인의 양심의 권리는 다수의 그것만큼 신성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견해로는, 오직 종파를 초월한 중립적 학교만이 이러한 권리들을 온전히 지켜줄 수 있었다.

"아니다!" 페리는 외쳤다. "1879년 우리 프랑스에서 통학하는 아동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학교의 교리가 반드시 가톨릭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에는 오직 양심의 이유만이 존재할 뿐이다. 만약 학교가 가톨릭 학교가 된다면, 그 진정한 주인이자 감독권을 쥔 자는 국가가 아니라 교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