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인류가 발명한 '인종': 인간 동물원에서 홀로코스트까지

인종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유럽인들이 세계 탐험에 나서기 전까지, 유럽의 경계 안에 살던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로 여겨졌다. 구약성서의 영향 아래에서 당시에는 '인종(race)'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종이라는 생각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항해에 나선 계몽주의 시대—자연주의자들의 시대—와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였다.

세계 밖으로 향한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만의 시각에 따라 상위 존재와 하위 존재를 구분하는 위계를 만들어냈다. 이 분류는 본질적으로 피부색에 따라 인간을 서열화한 것이었다. 증기기관의 발명, 고층 건축물, 그리고 세계 정복이라는 성취를 이룬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주의자들과 '과학적' 인종주의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실상 모든 사람이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이는 유럽인들이 받은 교육이 그러했기 때문이며, 흑인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과학은 '인종' 간의 이러한 차이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 차이는 대부분 조작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노예제 시기에 식민지 개척자들이 보고한 내용—원주민을 일하도록 만들어진 짐승과 다름없이 여기던 시대의 기록—에 의존했다.

이러한 생물학적 설명은 백인의 가공적인 우월성과 흑인의 가공적인 열등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제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했다. 이 학문은 이마에 비해 앞으로 돌출된 턱을 측정하는 방식을 비롯해 다양한 신체 측정 기법을 적용했다. 신체적 차이를 드러내겠다는 명분 아래, 과학자들은 흑인에게서 본능적·소화적·성적 충동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을 동물화시켰다.

'인간 동물원': 인간을 전시한 오락

식민지 박람회의 주도자들은 유럽인들이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대중에게 낯설기만 했던 원주민들을 하나의 볼거리로 전시했다. 인간 동물원(human zoo)은 큰 인기를 끈 오락거리였으며, 방문객들은 유원지의 짐승처럼, 심지어 산업 제품처럼 진열된 이국적인 '표본'들에 매료되었다.

과학자들 역시 인간 동물원을 통해 집 근처에서 원주민을 직접 관찰·연구할 수 있었다. '살아 숨 쉬는 실제 흑인'을 공개적으로 측정하며, '인종'이라는 이름의 분류 체계를 굳혀 나간 것이다. 19세기 말에 인간 동물원은 절정기를 맞았다. 나라를 떠나지 않고도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호기심과 열망으로 가득 찬 유럽인들로 붐비는 대중 오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 동물원은 과학자들의 권위에 힘입어 인종차별주의를 폭넓게 확산시켰다.

전시 뒤에 숨은 에로티시즘과 연극성

이러한 전시회가 큰 호응을 얻은 데에는 에로티시즘도 한몫했다. 다른 세계를 접하고 싶어 했던 유럽인들은 알몸에 가까운 몸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전통 춤은 쇼를 만들고 언제나 새로움을 요구하는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조작되었다. 생활 방식에 대한 과장은 전시를 허구로 만들었는데, 원주민이 갑자기 식인종으로 변하는 연출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식민지화와 노예제: 인종주의의 두 기둥

인종차별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연결 고리는 식민지화와 노예제다. 인간 동물원은 식민지화의 산물이었다. 흑인이 열등한 존재로 간주된다는 통념은, 자연주의자들이 남녀를 우리에 가두어 전시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조차 당연하게 만들었다.

원주민이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은 식민지화를 정당화했고, 이어서 노예제마저 정당화했다. 자연주의자들은 진화론을 차용해 이를 뒷받침했다.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는 사회적 불평등과 정복 전쟁을 인간 사회의 자연선택으로 묘사했다.

인종차별이 남긴 결과

1930년대, 나치는 이러한 '인종 간 차이' 논리를 이용해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그들은 다윈의 이론 중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부분만 골라 받아들였고, 모순되는 부분은 임의로 수정하거나 무시했다. 다윈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인종 간 위계를 입증하거나 백인을 최상위에 놓으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