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산업 혁명: 기계가 세계를 바꾼 시대

산업 혁명의 진행 과정: 세계가 기계로 움직이다

산업 혁명은 프랑스 혁명 직후인 19세기에 일어나 유럽 여러 나라에 산업화의 물결을 가져왔고,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기계의 발명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특히 증기 기관의 연료로 쓰인 석탄과 철은 산업의 두 가지 핵심 원자재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산업의 빵'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원자재를 바탕으로 19세기 가장 귀중한 발명품 중 하나인 철도가 등장했고, 운송은 한층 편리해졌습니다.

산업 발전의 또 다른 축은 통신의 진화였습니다. 전화의 등장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도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시대에 놀라운 신선함이었습니다. 운송과 통신은 이번 산업 혁명을 가장 상징하는 기술 발전이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끊임없이 개선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방직 기술이 섬유 생산에 도입되면서 기계를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를 판매하기 위한 백화점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기계가 장인보다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장인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실업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경제 성장과 상업주의

산업화 이후 유럽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동시에 국민들을 더욱 양분했습니다. 산업 혁명의 효과 덕분에 각국은 자국 상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중상주의 상인들은 귀금속을 비축하고 수출하여 금융력이 강한 국가들과 거래를 이어갔습니다. 자국의 대량 생산과 인접 국가들의 생산물까지 더해지면서 소비는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서유럽은 비슷한 사회 구조를 공유하며 하나로 묶여갔습니다. 특히 프랑스와 서독 지역,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사이의 연결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렇게 유럽은 귀금속과 부의 축적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민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경제 상황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주의 부르주아 고용주와 기업 경영자들의 소득만 반영했다면 상황은 훨씬 어두웠을 것입니다. 노동자의 일을 대신하는 기계의 발명으로 유럽 곳곳에서 실업이 발생했고, 이것이 사회주의 탄생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는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국민 모두에게 임금의 평등을 요구하며 등장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의 탄생과 열악한 노동 환경

19세기 산업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습니다. 여성과 아동, 남성 모두 상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노동력으로 동원되었습니다. 덕분에 가장 가난한 계층인 프롤레타리아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노동 조건은 자신의 보상만 바라보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논리에 맞춰져 있었고, 정작 노동자의 처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소비가 늘어나면서 노동 조건은 더욱 악화되어 급속히 '노동자의 비참함'이라 불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노동 시간은 끝을 알 수 없었고, 임금은 턱없이 낮았으며, 언제든 사고와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고용주들은 값싸고 몸이 유연한 아동을 선호했습니다. 아이들은 좁은 갱도나 베틀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수리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노동자들은 여러 차례 파업과 시위를 벌였지만, 당국은 투옥과 탄압으로 맞섰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상황은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은 무엇보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프롤레타리아의 임금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아동에 관한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어 아동 노동이 제한되었고, 최저 노동 연령이 8세로 정해졌습니다.

사회 계급 갈등

19세기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였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프랑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최하층 사회 계급으로,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제3신분'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19세기 초 부르주아지는 사회의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가난한 이들의 부를 쥐고 있던 구체제 귀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고, 귀족들은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자유주의 진영으로 기울었습니다.

곧바로 기업가와 사업가가 된 자유주의 부르주아는 무역의 자유를 원했고, 다소 부정한 방식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반면 형편이 어려운 사회주의자들은 재정 문제에 시달리면서도 찾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 사회 계급의 차이는 분명했고, 그래서 양측의 경쟁 관계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부르주아지가 노동 계급, 즉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일터와 가까운 도시에 정착했지만, 바로 그곳은 자유주의자들이 자리 잡고 산업 혁명이 가장 활발하게 꽃핀 곳이기도 했습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보다 아래 계층에게 빈곤, 질병, 알코올 중독, 행거를 남겼습니다. 부르주아의 눈에 프롤레타리아는 혼란과 무지, 파괴를 몰고 올 위험 요소였습니다. 1850년부터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는 사람 사이의 평등을 얻고 자유주의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을 외치며 시위와 파업에 나섰습니다.

산업 혁명 속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변천

19세기 전반기에는 자유주의가 가장 널리 퍼진 사상 흐름이었습니다. 자유무역 개념은 외부의 제약을 반대하되 사회적 불평등은 유지했던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산업 혁명은 이러한 방식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기업 주들은 사업을 스스로 규율하며 노동자를 착취해 호주머니를 불렸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국가 경제를 개선하고 부를 증진한다고 믿었으며, 이는 철학자 애덤 스미스가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사회주의가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자유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만회하려 했습니다. 산업 혁명의 결과물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따라 삶과 노동 조건을 개선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19세기 초반은 여전히 큰 사회 격차가 존재하던 시기였지만, 세기 말에 이르러 국민 간 부의 형평성이 비로소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