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문어 스타일: 1900년, 아르누보 장식 미술에 대한 통렬한 비평

1900년 양식의 잔재들

오늘날 우리는 사방에서 현대 양식, 즉 1900년 장식 예술이 남긴 흔적을 마주한다. 시대의 장식을 그대로 삼킨 채 가라앉은 '낡은 잠수함'이라고 시인 폴 발레리가 표현한 막심(Maxim's) 레스토랑, 장식미술관의 회고 전시실, 지하철 입구, 은세공사 테르제(Téterger)의 상점, 그리고 빈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저택이 그것이다.

이 장식은 돈과 기술, 재료, 노동력이라는 막중한 수단을 지닌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시대가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만하고 황홀하며 무정부적인 천재성, 그리고 기괴함을 좇다가 림프처럼 늘어진 어둠뿐이었다. 취향이 이토록 바닥까지 떨어진 적은 없었다. 화가 다냥-부브레(Dagnan-Bouveret)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빈에서 밀려온 오류의 물결

빈에서 출발한 오류의 물결이 유럽을 뒤덮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유럽 황혼의 징조일지도 모른다. 한 종류의 혼수상태, 실신이다. 당시 평론가 아르센 알렉산드르(Arsène Alexandre)가 '바람에 나부끼는 세르팡틴 곡선의 깊은 매력'이라 부른 것—그것이 바로 문어 스타일이다. 불에 덜 익은 녹색 도기, 팔다리처럼 번지며 늘어난 억지스러운 선, 헛되이 고문당한 재료.

호박, 서양호박, 마시멜로 뿌리, 피어오르는 연기의 소용돌이는 비논리적인 가구를 낳는다. 그 위에는 수국과 박쥐, 튜버로즈, 공작 깃털이 내려앉는다. 잘못된 상징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예술가들의 발명품이다. 그 가구들은 마치 당시 임상 심리학자들이 연구하던 병리 증상처럼 보인다.

자연을 닮았다고 믿었지만, 자연에서 가장 멀었다

우산꽃 차례, 조개껍질, 뼈, 씨앗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믿지만, 자연에서 이토록 멀어진 적은 없었다. 자연은 광기 어린 조형물들에게 모욕당한다. 모자이크 결정, 착색 유리 페이스트, 반투명 캐노피, 묘지 등롱용 도자기에 입힌 우윳빛 에나멜, 나무나 유리 위의 열상 장식, 피로그래피, 그리고 터코아즈를 흉내 내는 카보숑이 흩뿌려진 레몬빛 단색 바탕.

빛과 전기의 시대에 승리하는 것은 수족관, 초록빛, 심해, 잡종, 독이다.

색채의 연금술

1900년의 색채 연금술 연구는 말의 연금술보다도 적은 결실을 남겼다. 마치 기차가 가장 흔한 사물들을 짓뭉개 버린 듯하다. 보석들은 납작하게 눌린 덤덤 탄환 같다. 우리는 납처럼 슬픈 주석을 재평가한다. 늘리고 압연할 수 있는 그 금속으로 성합과 베젤, 먹통, 성배를 만든다.

1750년의 안락의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1930년의 니켈 도금 강철 튜브 긴 의자는 실제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선택받은 신사와 '누렇게 떠든' 숙녀를 위한 휴식처 따위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천 년 뒤에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웃음의 거리, 파리의 밤

문어 스타일: 1900년, 아르누보 장식 미술에 대한 통렬한 비평

그렇다! 웃음의 집(Maison du Rire)에서 젊은 드라넴(Dranem)의 '역겨워, 난 간다!'를 들었다.

어린 아가씨들에게 권하기엔 부적합한 곳이다.

"에펠탑에 오르기 전엔 속옷을 단단히 챙겨라!"

"아니! 거꾸로 된 저택에서!"

"아아, 그 수염!"

저녁에 걷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거리 중 나를 가장 매혹하는 곳은 쿠르라렌(Cours-la-Reine) 부지에 생긴 파리 거리(rue de Paris)다. 값싼 오락장 '부이부이', 변두리 극장, 배우들의 코코트, '취기 어린 디바', '자만하는 여배우', '흥행사', '사랑의 여인들', '추종자들', 개과천선하지 않는 마음들, 늙은 '시장'들, 그리고 만평가 셈(Sem)의 화보집에서 본 적 있어 되살아난 파리 명사들이 가득한 거리다.

해 질 녘이면 마르탱 거리 전체, 이탈리앙 대로(Boulevard des Italiens) 전체가 하나의 만남의 장이 된다. 밤나무에 닻을 내린 천막들, 유원지의 비계, 등불 행렬, 오락장과 극장의 포스터들이 거리를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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