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후, 변호사 르 히르(Le Hir)는 세느강 아래를 관통하는 6개 노선이 서로 교차하는 광대한 지하 철도망을 구상했습니다. 제3공화국 초입에 접어들면서 파리 시의회에는 온갖 종류의 철도 계획이 빗발치듯 제출되었습니다.
다채로웠던 초기 노선 구상
그중 하나는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 두 개의 직교 노선을 골격으로 삼았습니다. 또 다른 안은 도시의 중심인 팔레 루아얼(Palais-Royal)에서 광선처럼 뻗어 나가 주요 기차역으로 연결되는 복사형 노선을 그렸습니다. 바스티유(Bastille)를 거대한 환승 중심지로 삼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철도, 공중 지하철의 등장
1881년, 엔지니어 크레티앵(Chrétien)은 지하 대신 하늘에 철도를 놓자는 완전 고가식 철도를 제안하며 분위기를 일변시켰습니다. 이 발상은 동료 기술자들에게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앙젤리(Angély)는 줄지어 늘어선 기둥들이 선로를 받치고, 역은 기존 건물 안에 들어서는 방식을 내놓았습니다.
더 과감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두 개의 선로를 나란히 놓는 대신 상하로 겹쳐 올리는 입체 구조를 계획한 그는 자신의 설계에 흡족해 하며 이런 기묘한 말로 의견을 맺었습니다. "기술자가 도시철도를 마치 부끄러운 짓이라도 되는 양 감추지 않기를, 그것을 하나의 긍지로 여겨주기를 바랍니다!"
미관 논쟁과 기괴한 발상들
그러나 파리를 사랑하는 시민들은 언젠가 도시가 끔찍한 고가교들로 뒤덮여 흉측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분노했습니다. 수도의 경관을 지키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빅토르 위고(Victor Hugo)도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이 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럼에도 공중 지하철 지지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프로젝트 채택을 위해 끝까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기발한 발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실제로 1891년에는 한 발명가가 세느강을 따라 강 위 다리보다 6미터 높은 지점을 통과하는 4중 고가 철도를 진지하게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베르리에의 지하 노선 연구
다행히도 그 무렵 엔지니어 베르리에(Berlier)는 르 히르의 설계를 이어받아, 훗날 최종 계획의 토대가 될 지하 노선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파리는 하늘이 아니라 땅속에 메트로를 품게 된 것입니다.
민간 기업과의 치열한 각축
전문가들이 설계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파리 시의회는 미래의 지하철 건설권을 독점하려는 민간 기업들의 압력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가장 공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기존 철도 회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노선을 시내 한복판까지 연장할 방법을 궁리해 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