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 개시: '티즈닛(Tiznit)' 작전
9월 30일 토요일, '바야르(Bayard)' 부대는 르파주(Lepage)의 지휘 아래 출발했다. 오후 1시, 구미에(Goumier) 병사들은 탓케(That Khé)에서 도보 행군을 시작했다. 목표는 단 하나, 반드시 점령해야 할 동케(Dong Khé).
'티즈닛'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이 작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불과 두 주 전 막강한 화력으로 동케 수비대를 궤멸시켰던 베트민(Việt Minh)이 요새와 마을은 물론, 특히 그 일대의 능선들을 완고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1일, 르파주는 베트민이 버리고 간 나파(Na Pa) 초소를 점령했다. 더 전방에서는 포클(Faulques) 중위가 지휘하는 제1외인부대 낙하산보병대(1er B.E.P.) 소속 소대가 본대에 앞서 동케 분지로 접근했다. 이 임무를 맡기에 더없이 적합한 부대였다. 이 소대는 프랑스 원정군 최정예로 꼽히는 제1 B.E.P.의 선봉이었고, 지난 2년간 그 팔룩스 병사들은 전투에서 그 효능을 여러 차례 입증해 왔다.
오후 4시, 분지 앞에서
오후 4시가 다가오고, 동케는 직선거리로 1km도 채 남지 않았다. 아래쪽 넓은 분지 바닥에는 논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연이은 공방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초소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포클과 그의 병사들은 적 정찰대의 공격을 받는다. 결과는 반군 3명 사살, 생존자들은 흩어져 달아났다. 곧 경보가 울릴 것이 분명했다.
포클은 즉시 대대 본대에 상황을 알렸다. 베트민 주력부대도 머지않아 프랑스군의 존재를 파악할 것이므로, 신속히 움직여야 했다. 대대 부지휘관 장피에르(Jean-Pierre) 대위는 포클에게 소대를 이끌고 동케로 돌진하라고 명령했고, B.E.P.의 나머지 병력이 뒤따를 예정이었다. 장피에르는 속으로 빌었다. 요새에 갇힌 베트민이 많지 않기를, 기습이 통하기를.
포클이 출격했다. 그러나 동케는 생각했던 것만큼 가깝지 않았다. 중위는 수백 미터를 질주해야 했고, 4번 국도(R.C.4)를 따라 분지로 내뛰었다. 베트민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포클과 그의 병사들이 분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박격포와 기관총의 맹렬한 사격이 쏟아졌다. 베트민은 어디에서든 화력을 퍼부었다. 산에서, 남쪽 초소에서, 작은 사원의 보루에서.
시각은 오후 5시. 포클의 소대도, 합류한 제1 B.E.P. 본대도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다. 가장 무거운 사격은 산악 지대에서 날아왔다. 정작 동케 안에는 병력이 많지 않았다. 대대장 세그레탱(Segrétain)은 "르파주가 부대 전체를 투입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마을을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놓쳐버린 결정적 기회
그러나 르파주는 망설였다. 지형과 적에 대한 무지가 그를 배신했다. 그는 상황을 잘못 판단했고, 우유부단했으며, 끝내 돌진을 거부했다. 그는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가 공군과 포병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작전을 펼치는 편을 택했다. 즉시 북베트남 방면군(Z.F.N.E.)에 무전을 보내 포 2문과 승무원들을 낙하산으로 투입할 것을 요청했다.
이후 그는 옛 나파 초소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분지를 내려다보는 능선 위에 병력을 재배치했다. 포클에게는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다. 하루의 대가는 사망자 30명, 그리고 영원히 놓쳐버린 성공의 유일한 기회였다.
10월 1일 저녁은 양측 모두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갔다. 이 덕분에 1일 밤부터 2일 새벽 사이, 동케를 좌우에서 에워싸는 집게형(pince) 배치가 완성될 수 있었다. 서쪽에는 제1타보르(Tabor)와 제8 R.T.M., 동쪽에는 제1 B.E.P.와 나케오(Na Kheo) 방면 제11타보르 소속 두 개 구미(Goum) 부대가 자리 잡았다.
10월 2일, 참혹한 전투
10월 2일 새벽, 참혹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밤사이 베트민은 모든 병력을 소집해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상부에서는 제5구미가 여러 차례의 치열한 교전 끝에 많은 희생자를 내며 완고히 방어되는 능선선까지 진격했다. 나케오는 격렬하게 공격당했다. 양측의 피해는 엄청났고, 시체와 부상자가 능선의 양쪽 사면에 널렸다.
설상가상으로 비극이 터졌다. 적진을 기관총으로 제압하던 공군이 능선의 엉뚱한 쪽을 공격한 것이다. 베트민은 비행기 소리를 듣고 즉시 엄폐했고, 들통난 것은 오직 구미에 병사들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베트민과 비슷한 녹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 조종사들은 착각하고 아군 진영을 향해 기관총을 쏟아붓는다. 직접 무전으로 사격을 수정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몇 차례의 치명적인 저고도 공격을 반복했다.
마침내 구미 통신 장교 라울 몽토(Raoul Montaud) 중위가 지옥 같은 포화 속에서 신호판을 설치할 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신호판과 무전 중계 덕분에 조종사들은 마침내 공격 지점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하늘이 다시 흐려지면서 공중 지원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바야르' 부대에게 이는 재앙이었다. 공군의 개입이야말로 동케를 감싼 고지들을 확고히 장악하고 베트민이 점거한 요새를 무력화함으로써 전세를 뒤집을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석회암 정글 속의 눈먼 전투
정글 한가운데, 대포와 박격포, 기관총의 은신처 역할을 하는 수천 개의 동굴이 있는 석회암 능선 위에서 적은 어디에나 있었다. 프랑스군은 적을 찾아내지 못했고, 베트민 역시 종종 르파주 부대가 어느 능선을 '헤매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제1 B.E.P.의 팔룩스 병사들은 오전에 한 연대의 장교들이 지도 위에서 상황을 검토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장교들은 격렬한 사격 속에 급강하했지만 해당 연대는 즉각 반격했고, 한 시간 넘게 숨 막히는 밀림 속에서 눈먼 전투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정찰기 모라네(Morane)는 동케를 향해 진군하는 대규모 베트민 집결을 보고했다. 함정이 닫히고 있었다. 정오, 임무 종료. 그러나 임무는 완수되지 않았다. 동케는 탈환되지 못했고, 까오방(Cao Bằng)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막고 있던 관문은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