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강의 영웅적 방어
중공군의 진격을 막아선 최대의 장애물은 제29영국연방여단 소속 글로스터셔 연대의 영웅적인 저항이었다. 임진강에서 벌어진 이들의 사기적인 방어전은 중공군의 기세를 꺾었고, 그 진격을 사흘간 마비시켜 결국 공세 붕괴를 초래했다. 덕분에 유엔군은 질서 있게 후퇴할 수 있었다.
서울 앞에서 멈춘 중공군
4월 25일, 후퇴 작전은 서울 북쪽 수 킬로미터 지점에서 멈췄다. 유엔군은 수도 주변에 전차, 장갑차, 야포로 이루어진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고, 중공군은 주력 부대를 투입해 총공격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시도된 측면 기동 역시 좌절되었다. 4월 29일에는 유엔 공군이 나루배를 타고 한강 하구를 건너 서울로 진입하려던 6천 명 규모의 중공군 부대의 시도를 저지했다.
기세를 잃은 공세
결국 중공군의 공세는 주저하더니 완전히 동력을 잃었다. 단 일주일 동안 중공군은 고작 55km의 지형을 얻는 데 8만 명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치렀다. 같은 기간 유엔군의 사상자는 7천 명이었다.
5월 15일 시작된 봄 공세 2단계에서도 중공군의 손실은 더욱 처참해 12만 명에 달했다. 5월 20일 공세가 끝났을 때 그 대가의 결산은 처참했다. 인제에서 한국군 제3군단이 궤멸당한 것 외에는 미미한 영토 확보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유엔군의 반격으로 곧 상실되었다.
유엔군의 반격
5월 30일, 유엔군은 38도선과 일치하는 '캔자스선'까지 되돌아왔다. 해상 함포 사격의 지원을 받으며 동해안으로 진격한 일부 한국군 부대는 38도선에서 55km 북쪽의 간성에 도달하기도 했다.
드디어 유엔군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으나, 6월에 들어서면서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공군의 저항이 크게 강화되었다. 유엔군은 6월 12일 철원과 김화를 탈환해 삼각지대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전진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휴전 협상의 시작
바로 그때인 6월 23일, 소련의 유엔 대표 야코프 말릭이 정전 회담 개시를 제안했다. 7월 10일부터 38도선의 개성에서 시작된 협상은 공산측 대표들의 무의미한 언쟁 때문에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야 공식적으로 끝을 맺었다.
교착 속의 2년
회담이 이어진 2년 동안 전장에서의 전투는 짧지만 격렬한 국지전의 형태를 띠었다. 기묘한 운명의 아이러니로, 이 기간 동안 한국의 공산군 세력은 크게 증강되었다. 그들의 군대는 훨씬 현대적이고 잘 무장된 전투 부대로 탈바꿈했다. 1952년 말 공산군 병력은 80만 명에 달했고, 대공포를 포함한 최신식 소련제 화포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유엔군이 계속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공산군은 그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거대한 군대에 필요한 보급품의 수송을 보호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쏟는 '생존 전쟁'을 강요당했다.
제공권을 두고 벌인 항공전
1950년 말 소련제 MiG-15 요격기가 실전에 투입된 이후, 공산군은 경험이 풍부하고 숙련된 유엔 조종사들로부터 제공권을 빼앗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노력이 헛수고였음은 손실 집계에서 드러난다. 유엔 공군은 항공기 114대를 잃는 동안 공산군 항공기 2,135대를 파괴 또는 손상시켰는데, 여기에는 MiG-15 838대가 포함되어 있다(확증된 수치는 아니지만 신빙성 있는 추정이다). 전쟁 마지막 단계에서는 MiG-15 13대가 격추될 때마다 미군 F-86 1대가 손실되는 비율이었다.
처참한 인명 피해
인명 손실의 비교 수치도 마찬가지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중공군과 북한군의 사상자는 약 200만 명에 달한 반면, 유엔군의 사상자는 약 38만3천 명이었다. 포로 수는 공산군 17만1천 명, 유엔군 약 9만3천 명이었다.
전쟁이 남긴 것
한국전쟁은 어느 쪽에도 영토상의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적대 행위가 종결될 때 공산주의 북한과 친서방 남한 사이의 경계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절제를 가르쳤다.
이제 양측은 상대가 자신의 이익과 이념을 지키려는 결의를 보다 정확하고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공산 중국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새롭고 더욱 결연한 실체로 등장했으며, 낡은 '식민지'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