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한국전쟁, 하늘에서 벌어진 최초의 제트기 결투: MiG-15 vs F-86 세이버

한국전쟁, 하늘에서 벌어진 최초의 제트기 결투: MiG-15 vs F-86 세이버

공산권 조종사들이 아직 미숙하다는 점은 분명했지만, MiG-15가 연합군의 모든 항공기를 압도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곧 드러났다. 공포에 사로잡힌 미군은 새로운 F-86A 세이버(Sabre)로 무장한 제4 요격전투비행단의 긴급 전선 배치를 명령했고, 이 부대는 12월 초 한국에 도착했다.

MiG-15 vs F-86 세이버, 맞붙은 두 기체

세이버의 성능은 MiG-15에 필적했다. 다만 더 가벼운 소련제 전투기 MiG-15가 상승률과 선회 기동 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MiG-15의 무장은 3문의 기관포(23mm 2문, 37mm 1문)로 구성되어 단 한 발의 명중만으로도 적기를 격추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다. 반면 발사 속도는 F-86의 6정 기관총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것은 기체의 성능보다 사람이었다. 중국 조종사들의 미숙함과 미국 조종사들의 숙련된 전투 기량이 양측의 교환비를 크게 벌려 놓았다.

1950년 11월, 최초의 제트기 공중전

그리하여 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트기 공중전이 벌어진 무대가 되었다. 첫 교전은 1950년 11월 7일, MiG-15와 F-80 사이에서 펼쳐졌다. 공산권 전투기의 이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급강하 공격으로 적기를 격추한 쪽은 F-80이었다. 같은 해 12월 17일에는 세이버가 MiG-15 한 대를 격추하며 제트 전투기 간의 본격적인 대결 구도를 열었다.

이후 2년 반에 걸친 공중전에서 세이버는 무려 791대의 MiG-15를 격추했다. 한국 상공에서 파괴된 MiG는 모두 807대였던 반면, 세이버의 손실은 78대에 그쳤다. 연합군에 유리한 손실 교환비는 무려 12.5 대 1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닮은 제트기 공중전

흥미롭게도 이 시기의 공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그것과 놀랄 만큼 흡사했다. 고도 3,000m, 시속 1,100km에 이르는 속도라는 물리적 조건은 달라졌지만, 전투 환경과 전술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지상 통제도 없었고, 레이더도 없었다(F-86에 장착된 APG-30 사격통제레이더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의 조종사에게 낯설게 느껴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항법은 지도를 들고 지형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식이거나, 더 대략적으로는 추측 항법에 의존해야 했다. 연료 소모량 계산 역시 조종사가 자신의 항속 가능 거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가늠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적기를 요격하기 위해 조종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눈뿐이었다. 교전이 시작되면 속도는 시속 600~700km까지 떨어졌고, 어느 한쪽이 가속으로 이탈을 시도하거나 격추될 때까지 치열한 기동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더 뛰어난 조종사의 몫이었다.

베트남이 증명한 공중전의 불변 법칙

주목할 점은 이후의 전쟁들, 즉 인도-파키스탄 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의 경험이 공중전의 근본 조건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은 레이더에 의존한 원거리 공대공 미사일 전투라는 '항공전의 새로운 시대'를 확신히 믿었다. 그러나 베트남 상공에서 그들은 냉혹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말았다. 결국 제트기 시대에도 공중전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여전히 조종사의 기량과 근접 격투전의 원칙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