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제82공수사단 개요
미국 육군 제82공수사단(82nd Airborne Division)은 미국 육군 소속의 공수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으며, 마켓 가든 작전과 벌지 전투(아르덴느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 작전에도 투입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원래 이 부대는 보병 사단이었습니다. 제82보병사단은 1917년 8월 조지아주 캠프 고든에서 미국 전역 출신 병사들로 창설되었는데, 이 때문에 "올 아메리칸(All-American)"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1918년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어 전사자 1,298명, 부상자 6,248명의 피해를 입었으며, 전쟁이 끝난 뒤 해체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1942년 3월 25일, 이 부대는 오마 브래들리(Omar Bradley)의 지휘 아래 루이지애나주에서 보병 사단으로 재창설되었습니다. 같은 해 8월, 다른 직책으로 전임된 브래들리를 대신해 매슈 B.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준장이 지휘관으로 부임했습니다. 사단은 재편성을 거쳐 미국 최초의 공수사단이 되었고, 8월 15일 제82공수사단이라는 명칭을 얻었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로 이동했으며, 현재까지도 미국 제18공수군단 예속 부대로 남아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1943년 5월, 사단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상륙한 뒤 튀니지로 진격했습니다.
이탈리아 전역
1943년 7월 9일, 개빈 대령이 지휘하는 사단 예하 제505연대와 제504연대가 시칠리아 상륙 작전(허스키 작전)의 일환으로 젤라 인근에 강하했습니다.
1943년 9월, 개빈 대령이 이끄는 병력 2,500명이 아발란체 작전(Avalanche)의 일부로 밤을 틈타 살레르노 만에 강하했습니다.
1943년 10월 1일, 사단은 나폴리에 입성했습니다.
노르망디 전투
1944년 4월, 사단은 오버로드 작전을 위해 잉글랜드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사단은 제505·507·508낙하산보병연대와 이탈리아 전역에서 입은 손실로 재건 중이던 제504연대, 제325글라이더보병연대, 야포 대대 3개, 그리고 대공포병 대대 1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사단은 제101공수사단과 함께 상륙 지점의 서쪽 측면에 강하했습니다. 1944년 6월 5일 밤부터 6일 새벽 사이, 사단 분견대가 생트메르글리즈(Sainte-Mère-Église)를 점령했습니다.
무선 비컨과 통신 장비를 갖춘 제82·101공수사단의 선도요원(pathfinder)들은 1944년 6월 5일 저녁 영국 노스 위섬 공군기지(RAF North Witham)를 출발해, 주력 부대가 강하할 구역을 표시하는 임무를 먼저 수행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
1944년 9월,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로 "점핑 짐"이라 불린 제임스 M. 개빈(James M. Gavin) 소장의 지휘 아래, 사단은 전쟁 최대 규모의 공수 작전인 마켓 가든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사단의 임무는 그레이브(Grave)와 네이메헌(Nijmegen)의 교량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벌지 전투
1944년 12월 16일부터 1945년 1월 말까지, 랭스 지역에서 예비대로 대기하던 사단은 벨기에 아르덴느로 긴급 이동해 스타벨로(Stavelot) 지역에서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라글리즈(La Gleize)와 스토우몽(Stoumont) 전투에도 참가했습니다.
1945년
1945년 2월, 사단은 루르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 뒤 프랑스로 철수해 재정비에 들어갔습니다.
1945년 4월, 독일 엘베 강 전선에서 소련 적군과 합류했습니다.
1945년 5월 초, 사단은 노이엥감메(Neuengamme) 수용소와 그 산하 대부분의 분소를 해방시켰습니다.
정전 이후 사단은 베를린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 전역에서 사단은 전사자 1,619명, 부상자 6,560명, 부상 후 사망자 332명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산토도밍고
1965년 4월, 내전에 휩싸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작전에 사단이 투입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1968년 2월, 뗏(Tết) 공세 이후 사단 예하 여단 하나가 후에(Huế)로 파견되었습니다.
22개월간의 주둔 기간 동안 사단은 전사자 184명, 부상자 1,009명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걸프 전쟁 (1990~1991)
사단은 이 분쟁에도 참전했으며, 예하 여단 하나는 프랑스 다게(Daguet) 사단에 배속되어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2003년 겨울 중동에 도착한 제82공수사단은 이라크 서부 수니파 지역, 특히 팔루자(Fallujah) 시를 안정화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2004년 여름 초, 이 사단 병력들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팔루자에서 반란이 촉발되었고, 이 도시는 이라크 내 이슬람주의 및 바트당계 반군의 상징적인 거점이 되었습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 작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남긴 대참사 이후, 공수부대원 5,000명이 구호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작전 거점은 뉴올리언스 국제공항이었습니다.
2005년 및 2007년 조직 구조
오늘날 제82공수사단은 미국 제18공수군단을 구성하는 핵심 부대 중 하나입니다. 2005년 기준으로 3개 전투여단을 두고 있었습니다.
- 제1여단 / 제504낙하산보병연대
- 제2여단 / 제325공수보병연대
- 제3여단 / 제505낙하산보병연대
미 육군 개편 계획에 따라 2007년에는 4개 전투여단과 육군 항공여단 1개로 재편되었습니다.
주요 지휘관
창설 시 지휘관: 매슈 B.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소장
부지휘관: 제임스 M. 개빈(James M. Gavin) 준장(노르망디 전투 이후 사단장 승진)
제2부지휘관: 조지 P. 하웰(George P. Howell) 준장
영화와 관련해서는 제505낙하산보병연대 제2대대의 벤저민 H. 반더부르트(Benjamin H. Vandervoort) 중령 역을 존 웨인(John Wayne)이 연기한 것을 기억할 만합니다.
반더부르트 중령은 강하 과정에서 왼쪽 발목을 다치고도 치료를 거부하고 생트메르글리즈 점령과 확보 작전에 끝까지 참여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영화 《최장의 하루(The Longest Day)》의 각본가들은 이 장교에게 클로즈업을 부여했고, 상징적인 배우 존 웨인에게 그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