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육군항공대의 주력 전투기였던 P-47 썬더볼트의 후계기로 설계된 리퍼블릭(Republic) F-84 썬더젯은 그 뛰어난 전신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기체였습니다. 알렉산더 카르텔리(Alexander Kartveli)가 설계한 이 항공기는 북미 F-86 세이버, 소련의 MiG-15, 영국의 호커 헌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1세대 최고의 전투기 반열에 올랐고, 1960년대 초까지 길고 치열한 실전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미 공군에서 썬더젯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최초의 단좌 전투기였습니다.
개발 배경과 다양한 파생형
미국은 이 기체의 수많은 파생형을 생산했으며, 그중 F-84F는 초기 설계를 거의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모델이었습니다. 이 모델은 45도 후퇴익을 채택하여 기체 전체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각 버전의 시제기를 포함해 총 7,889대의 F-84가 생산되었는데, 그중 4,457대는 초기 5개 버전의 특징인 직선익을 장착했고 나머지는 후기 양산형의 후퇴익을 달았습니다.
썬더젯은 미 공군만이 사용한 기체도 아니었습니다. 생산된 F-84의 약 절반인 정확히 3,723대가 전후 군사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NATO 회원국 및 여러 비동맹국 부대에 보급되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공군은 1952년 F-84를 도입하여 사진 정찰형인 RF-84F 형식으로 1974년까지 운용했습니다. 썬더젯은 1960년대 중반까지 미 공군 현역으로 복무하다 이후 예비부대로 넘어갔습니다.
F-84의 탄생 과정
일찍이 1944년 알렉산더 카르텔리는 제트 엔진을 장착한 P-47 썬더볼트의 후계기 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차례 실패한 설계 끝에 그 해 말경 카르텔리는 훗날 F-84로 태어날 기체의 기본 설계를 확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너럴 일렉트릭 TG-180 엔진(후의 J35)을 중심으로 설계된 이 항공기는 단순한 라인과 온건한 테이퍼 및 종횡비를 지닌 직선 날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1945년 초, 이 프로젝트가 지닌 가능성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 공군은 리퍼블릭사에 XP-84로 명명된 시제기 3대와 양산기 400대를 발주했습니다. 첫 번째 기체는 약 1년여 뒤인 1946년 2월 28일에, 두 번째 기체는 같은 해 8월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같은 해 9월 7일에는 두 번째 XP-84가 평균 시속 983km의 세계 속도 신기록을 수립하며 신형 기체의 우수한 성능을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미국은 즉시 25대의 양산 전 시제기(YP-84) 생산에 착수했습니다. 이 기체들은 엔진, 날개 보조유조설 설치, 무장 등에 관한 일련의 개수를 거치며 YP-84A로 명명되었습니다. 최초의 실전 배치형은 P-84B로, 무장과 일부 구조 세부 사항이 리퍼블릭사의 엔지니어들에 의해 수정되었습니다. 이 형식은 1947년 6월에 비행했고 곧바로 부대에 인도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226대의 P-84B를 생산한 뒤 생산 라인을 다음 형식인 P-84C로 교체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시제기는 1948년 4월에 비행했으며, 약 두 달 뒤인 6월 11일 군 당국은 작전 명칭을 'P'에서 'F'로 변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생산된 191대의 F-84C는 구조 변경이 이루어진 점이 특징입니다. 기술자들은 전기 계통을 재설계하고 연료 공급 장치와 유압 장치를 전면 개수했습니다. 1948년 11월에 등장한 세 번째 양산형 F-84D(154대)는 후속 개량이 적용되었습니다. 더 두꺼운 외피의 채택으로 구조가 강화되었고, 연료 공급 계통에는 예열 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더 강력한 J35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 속도가 시속 965km로 늘었고 만재 중량은 약 300kg 증가했습니다.
F-84D는 한국전쟁에서 실전 투입된 최초의 썬더젯이었습니다. 이 기체들을 이어 F-84E 양산형이 배치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총 843대가 생산되었으며 그중 100대는 NATO 가입국에 인도되었습니다. 최초의 F-84E는 1949년 5월 18일에 비행했으며, 기내 장비에 대한 수많은 개량과 조종석 내부 배치 개선을 위한 동체 약 30cm 연장이 특징이었습니다.
직선익을 장착한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버전은 1950년 11월,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경전투격폭격기를 원했던 전술공군사령부(Tactical Air Command)의 요청으로 탄생했습니다. F-84G의 인도는 다음 해 1월부터 시작되었고 생산량은 총 3,025대에 달했으며, 그중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정확히 1,936대가 동맹국에 넘어갔습니다. 무장 변경 외에도 이 모델은 추력 2,540kg의 J35 엔진으로 구동되며 공중급유 장치와 자동조종장치를 갖추었습니다. F-84G(미 공군의 마지막 직선익 전투기)를 완성한 뒤 카르텔리는 이 기체가 작전 성능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고, 남은 유일한 해결책은 초기 설계를 대폭 수정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실전 기록
1951년 한국 대구에 배치된 제27호위전투비행단 소속 F-84E
썬더젯은 실전에 투입된 마지막 아음속 직선익 전투폭격기였습니다.
한국전쟁 중 미국은 처음에 F-84를 폭격기를 MiG-15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호위기로 운용했습니다. 그러나 MiG-15에 명백히 성능이 밀린 썬더젯은 이 임무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빠르게 드러났고, 이후 지상 공격에만 투입되어 완벽한 만족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러한 작전 중 약 330대의 F-84가 손실되었으며, 그 절반은 대공포화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는 1956년 이집트에 대한 무스케티어 작전(Operation Musketeer)에서 F-84F를 투입했습니다. 터키 역시 1974년 북키프로스 침공 당시 F-84F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F-84G 썬더젯 제원
- 기체명: 리퍼블릭 F-84G 썬더젯
- 제작사: 리퍼블릭 에비에이션(Republic Aviation Corp.)
- 형식: 전투폭격기
- 도입 연도: 1950년
- 엔진: 앨리슨 J35-A-29 터보제트, 추력 2,540kg
- 전폭: 11.10m
- 전장: 11.61m
- 전고: 3.83m
- 이륙 중량: 10,670kg
- 최고 속도: 해수면 기준 시속 1,001km
- 최대 운용 고도: 12,340m
- 항속 거리: 3,220km
- 무장: 기관총 6정, 탑재 화물 1,814kg
- 승무원: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