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안 다네(Diane d'Anet)』, 위풍당당한 수사슴을 곁에 둔 디안 드 푸아티에를 형상화한 대리석 조각상. 1550~1560년경 제작,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WIKIMEDIA COMMONS
앙리 2세가 정부(情婦) 디안 드 푸아티에를 위해 지은 샤토 다네(Château d'Anet, 앙레 성)의 조각품 가운데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1804년 알렉상드 르누아르가 파리 프티오귀스탱 수도원에 마련한 자신의 프랑스 기념물 박물관을 위해 구해 낸 작품들뿐이다. 1795년 성상파괴 물결로 크게 훼손된 이 성은 해체되어 매각되었고, 새 주인이 폭발물로 일부를 철거한 뒤 방치되었다. 그러나 프티오귀스탱으로 옮겨졌다가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된 유명한 디아나 상은 살아남았고, 지금은 16세기 프랑스 조각사를 대표하는 핵심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절제된 에로티시즘
이 작품은 앙리 2세의 정부를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디안 드 푸아티에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로 등장하여, 글레이하운드 '프로키온'과 바르베 '키리우스'라는 두 마리의 개를 곁에 두고 누운 자세로, 가는 주둥이와 커다란 눈을 지닌 위엄 있는 수사슴을 껴안고 있다. 노출이 많지만 정숙하고 대리석처럼 차가운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고개를 사슴 쪽으로 돌리고, 다리에 움직임을 머금은 채 왼손을 활 위에 얹어 동물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는 듯하다. 뒤쪽에 배치된 개들 가운데 바르베는 들떠 있고, 글레이하운드는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신의 머리에는 초승달 모양의 관이 얹혀 있다. 이는 왕이 차용한 디아나의 상징으로, 여기에서 늘어뜨려진 보석이 매끄럽고 맑은 이마를 장식한다. 보석의 장식은 머리카락의 섬세한 굴곡과 조화를 이룬다. 조각상 전체는 관(棺) 모양의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데, 그 타원형 형태는 성의 건축가 필리베르 드 로름(Philibert de l'Orme)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그는 건물의 벽난로에도 같은 형태를 사용했다. 게와 가재 문양의 장식은 이 작품의 원래 용도를 짐작하게 한다. 즉 이 웅장한 조각군은 성 정원의 분수 하나를 장식했던 것으로, 처음에는 좌측 안뜰 분수를 위해 반원형 아치 구조물 위 높은 곳에 놓였다가, 17세기에 원형 연못 한가운데의 더 낮은 분수로 옮겨졌다.
작자는 누구인가
이 조각상의 발주 경위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으며, 작가의 신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정숙한 여신에게서 감돌아오는 은근한 에로티시즘, 얼굴과 몸의 조화롭고 섬세한 선, 길게 늘어진 신체 비례는 몇 해 전 프랑수아 1세가 베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에게 의뢰한 웅장한 청동 부조와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첼리니가 피렌체로 돌아가기 전에 제작된 이 부조는 이후 샤토 다네로 옮겨져 중앙 현관을 장식했는데, 그곳에서도 디아나는 사슴 곁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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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공사에서 천재 조각가로 이름을 날린 이 피렌체 출신 장인의 또 다른 작품, 즉 대지와 바다의 알레고리가 마주 서 있는 프랑수아 1세의 소금함과의 유사성은 한때 이 조각상을 이 청동 세공의 명장에게 귀속시키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가설은 그의 생애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설득력을 잃는다. 피렌체로 떠나기 전에 이 작품을 제작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양식 연구 역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미 르누아르가 언급한 바 있는 장 구종(Jean Goujon) 또는 그의 제자 중 한 사람과의 연관성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정치적 작품
이 조각상에서 작용하는 것은 퐁텐블로 학파의 매너리즘이 남긴 영향과 프랑스 르네상스 고유의 양식 확립 사이의 긴장이다. 앙리 2세는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프랑수아 1세의 대대적인 프로젝트들과 결별하고, 퐁텐블로를 외면한 채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가 맡은 루브르 공사와 필리베르 드 로름이 담당한 앙레 성 공사에 역량을 집중했다. 후원의 새로운 우선순위를 천명하면서 이 군주는 퐁텐블로의 국제적 분위기와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기대었다.
그러나 앙리 2세가 아직 진행 중이던 퐁텐블로 공사의 관리를 맡긴 위대한 이탈리아 석구(碩匠) 프리마티초(Primaticcio)의 영향은 조각가들에게까지 계속 미쳤다. 루브르에 소장된, 그의 유파에 귀속되는 소묘를 바탕으로 이 조각상이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신선함과 순수성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고전주의는 벨리퐁텐, 즉 퐁텐블로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더 읽을거리
• H. Zerner, 『프랑스의 르네상스 미술: 고전주의의 발명(Renaissance Art in France. The Invention of Classicism)』, Flammarion, 1996.
• Anthony Blunt, 『필리베르 드 로름(Philibert de l'Orme)』, G. Monfort,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