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과와 '노르망디' 부대의 탄생
1943년 4월 5일, 알베르 프레조지 중위와 알베르 뒤랑 소위가 스몰렌스크 남쪽 로슬라프 지역으로 심층 정찰 임무를 나선 소련 Pe-2 폭격기를 호위하고 귀환하던 중, 독일 포케불프 Fw 190 전투기 두 대와 조우했다. 프레조지가 근거리 후방 사격으로 한 대를 격추시켰고, 뒤랑이 3/4 전방 사격으로 나머지 한 대를 격추시켰다. 이 두 전과로 인해 프랑스 전투기 그룹 제3호 '노르망디'라는 이름이 최초로 공식 보도자료에 등장하게 되었다.
새로운 구상: 자유 프랑스의 동부 전선 참전
프레조지, 뒤랑, 그리고 그들의 지휘관 조제프 풀리켄 사령관을 비롯한 12명의 전투기 조종사, 2명의 연락 조종사, 군의관, 통역관, 42명의 정비사 등 총 61명의 역사는 1941년 6월 22일 새벽, 독일 국방군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비시 정권이 8일 후 모스크바와 단교하고 대사관 인원을 터키를 경유해 소환하자, 공군 무관 샤를 뤼게 대령은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1941년 12월 런던에 도착한 그는 드골 장군을 알현했고, 드골은 연합국 측에서 프랑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소련 공군에 프랑스 전투기 그룹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1942년 2월, 자유 프랑스 공군 사령관 마르샬 발랭 장군이 영국 주재 소련 대표부에 전투기 중대 파견 제안서를 전달하며 협상이 시작되었다. '적군과 함께 싸우는 프랑스 부대'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소련 수뇌부가 이를 수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42년 9월 1일, 드골 장군의 명령으로 조제프 풀리켄 사령관이 전투기 그룹 제3호 '노르망디'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첫 자원자들은 8월 17일 런던을 출발했고, 10월 7일 레바논 라야크에서 중동에서 온 인원들과 합류했다. 11월 12일 소련 비자가 발급되면서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기차, 트럭을 갈아타며 17일간 바그다드, 바스라(이라크), 아바즈(이란), 테헤란, 바쿠를 거쳐 11월 29일 모스크바 북동쪽 이바노보에 도착, 즉시 Yak-7로 훈련을 시작했다.
제1차 작전: 툴라스네 사령관의 전사
1943년 2월 22일, 부대를 정상 궤도에 올린 풀리켄 사령관이 영국으로 전출되고 장 툴라스네 사령관이 지휘봉을 넘겨받으며 '노르망디'(1944년 7월 31일 '노르망디-네만'으로 개명 전까지)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된다. 세 차례 작전으로 나뉜다: 1943년 3~11월, 1944년 5~12월, 1944년 12월~1945년 5월.
3월 22일 전선으로 이동해 칼루가(모스크바 남서쪽) 북쪽 20km 폴로트니아 자보드 비행장에 주둔했다. 4월 5일 프레조지와 뒤랑의 승전으로 소련 측은 프랑스 조종사들의 전투 능력을 확신하게 되었다.
4월 13일, 6기로 편성된 3개 초계 편대가 자유 사냥 임무로 출격했다. 선도 편대: 툴라스네 사령관과 데르빌 중위; 중간 편대: 마에 소위와 비지앙 준위; 고공 편대: 뒤랑 소위와 포잔스키 중위. 오후 3시 9분, 고공 편대가 우측 500m 상공에서 Fw 190 4대를 발견했다. 1분 뒤 교전이 벌어졌고, 몇 분 만에 독일기 3대를 격추했으나 데르빌, 비지앙, 포잔스키 세 명의 프랑스 조종사가 귀환하지 못했다. 부대의 첫 전사였다. 5월 7일에는 마에 소위가 스파스-데미얀스크 지역에서 대공포에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다. 생존 조종사 10명만 남은 '노르망디'는 6월 초 카티운키 기지로 이동했고, 9일 피에르 푸야드 사령관과 6명의 증원 조종사가 합류했다.
6월은 정찰과 자유 사냥 외엔 평온했다. 7월 10일 밤 10시,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포격 준비가 시작되며 오룔 전투가 발발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프랑스 조종사들은 112회 출격, 독일기 17대 격추라는 전과를 올렸으나 6명이 전사했다. 7월 14일 장 테데스코, 16일 알베르 리톨, 노엘 카스텔랭, 아드리앙 베르나봉, 17일 피르맹 베르메유. 그리고 같은 날 툴라스네 사령관마저 실종되었다. 푸야드 사령관이 지휘를 맡았을 때 남은 조종사는 9명뿐이었다.
8월 오룔(5일 해방)에서 흑해까지 독일 전선이 붕괴했다. 신규 조종사 7명이 합류하고 신형기 15대 Yak-9(야크-1보다 강력하고 빠름)를 인수했다. 프랑스 정비사들은 소련 인력으로 교체되어 중동으로 철수했다. 10월 11일 드골 장군으로부터 해방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고, 11월 6일 툴라(모스크바 남쪽 180km)로 철수해 동계 주둔에 들어갈 때 이미 72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창설 멤버 중 생존자는 6명뿐이었다.
제2차 작전: 연대로 승격, '노르망디-네만'으로 개명
부대는 5월 26일까지 툴라에 머물렀다. 북아프리카에서 증원 조종사 15명이 도착해 4개 비행대대(루앙, 르아브르, 캉, 셰르부르)로 편제가 확대되었고, 2월 7일 소련 공군 편제에 따라 연대급으로 승격되었다.
5월 25일 스몰렌스크 서쪽 50km, 초가집 20여 채의 작은 마을 두브롭스카 기지로 이동했다. 전선은 20km 앞이었다. 6월 23일 새벽, 격렬한 포성과 함께 벨라루스 공세가 시작되었다. 600km 전선에서 소련 중앙 전선 군단이 동시 다발 공격을 개시했고, 맞은편엔 독일군 60개 사단이 포진해 있었다. 민스크가 7월 3일 해방되었고, 독일군은 3주 만에 30개 사단이 괴멸되었으며 네만 강을 여러 지점에서 도하했다. 독일군 38만 명 전사, 15만 명 포로, 벨라루스 전역과 리투아니아, 폴란드 일부가 해방되었다.
7월 29일 네만 강변 알리투스 기지로 이동했다. 프랑스 조종사들은 프로이센 상공에서 첫 교전을 치르며 신형기 Yak-3(야크-9를 대체)를 고대했다. 1944년 작전 전반기 동안 야크-9로 1,015회 출격, 12승을 추가했다. 7월 31일, 네만 강 도하 전투에서의 공로를 치하해 스탈린의 명령으로 '노르망디' 연대는 '노르망디-네만' 연대로 개명되었다.
8월 중순 신형기 Yak-3가 도착했다. 두랄루민, 합판, 캔버스 구조로 1형과 9형보다 날렵하며, 4,000m 이하 고도에서 Fw 190과 Me 109를 약간 상회하는 성능을 보였다. 상승과 선회가 우수했으나 방어력은 낮고 항속 시간은 1시간에 불과했다.
8월 20일 임무 재개. 23일 파리 해방 소식에 라 마르세예즈 합창과 보드카 파티가 벌어졌다. 9월은 지상 공격과 자유 사냥 위주로 공중 활동이 둔화되었다. 10월 12일, '고참' 조종사들이 3주 휴가로 프랑스행을 준비하던 중 악천후로 출발이 연기되었다. 그날 오후, 푸야드 대령은 소련 측으로부터 대규모 공세 임박을 통보받았다. 작별 만찬 자리에서 그는 공세를 놓칠 수 없다며 잔류를 선언했고, 동행 예정이던 전원도 짐을 풀었다.
15일 푸야드 대령은 목표가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임을 알렸다. 16일 오전 10시 30분, 통상적인 철우(鐵雨) 포격과 함께 공세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조종사들은 당일 100회 출격, 연합 폭격기 126대 호위, 독일기 29대 격추(Fw 190 16대, Me 109 8대, Ju 87 5대)라는 압도적 전과를 무손실로 달성했다. 이후 며칠간 공세가 지속되었다:
- 17일: 109회 출격, 12승. 장 에모네 조종사 기체 미귀환(낙하산 탈출 후 소련 전차병에 의해 구조)
- 18일: 88회 출격, 12승(Fw 190 7대, Me 109 5대)
- 22일: 56회 출격, 14승
- 23일: 56회 출격, 9승
- 27일: 32회 출격, 2승
이 공세로 동프로이센에 폭 140km, 깊이 30km의 돌파구가 열렸으나 최종 목표 쾨니히스베르크 점령엔 이르지 못했다. 11월 4일, 연락 조종사 장 드 팡주가 독일 땅에 최초로 자력 착륙했고, 28일 연대 전원이 독일 영토 기지에 착륙했다. 1944년 말, 18개월간 지휘한 푸야드 대령이 4년 만의 고국 휴가를 떠났다. 12월 12일 루이 델피노 사령관 취임 시 '노르망디-네만'은 199승, 4,000회 출격, 700회 교전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3차 작전과 샹젤리제 상공 비행
12월 말 로베르 마르키와 로베르 이리바르네가 각각 200번째, 201번째 승전을 올렸다. 1월 초 악천후로 발이 묶였으나 16일 안개가 걷히며 출격 재개. 25일 소련군이 쾨니히스베르크 28km 앞까지 접근했으나, 나치 이론가 로젠베르크의 고향이자 프로이센의 수도인 이 대학 도시는 4월 9일까지 저항했다. 4월 15일 이후 전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조종사들은 종전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5월 9일, 종전. '노르망디-네만' 조종사들의 무훈(공인 격추 273대)을 기려 소련 정부는 그들이 타고 싸운 기체로 귀국하는 것을 허락했다.
6월 15일 서쪽으로: 포젠, 프라하, 슈투트가르트를 경유. 6월 20일 프랑스 상공 진입. 라인 강과 스트라스부르, 보주 산맥, 생디지에, 마른 강, 센 강... 그리고 파리. 오후 6시 15분, 야크-3 캐노피에 얼굴을 붙인 조종사들이 샹젤리제 상공을 비행했다. 25분 뒤, 40대의 항공기가 르부르제 활주로에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