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유틀란트 해전 1916: 영국 해상 패권을 흔든 역사적 대격돌

영국 해상 패권에 균열, 독일 함대의 압승

독일의 우수한 함포 화력과 더욱 철저히 훈련된 독일 선원들이 결합하면서, 영국의 해상 지배력이 무너진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상 최대의 해상 대결

킬 운하의 모항으로 귀항하던 독일 함대는 수요일 오후 북해에 진입했고, 유틀란트 앞바다에서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영국 함대와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해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전투가 마무리되었을 때 영국은 순양함 라이온(Lion), 인데파티거블(Indefatigable), 퀸 메리(Queen Mary), 인빈시블(Invincible)과 무장 순양함 블랙 프린스(Black Prince), 워리어(Warrior), 디펜스(Defence)를 잃었습니다. 여기에 제5전대 소속의 말라야(Malaya), 바럼(Barham), 워스파이트(Warspite), 밸리언트(Valiant)함은 처참한 피해와 막대한 사상자를 낸 뒤 독일에 항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편 독일 역시 경순양함 엘빙(Elbing), 로스토크(Rostock), 비스바덴(Wiesbaden)과 순양함 프라우엔로프(Frauenlob), 그리고 다수의 어뢰정을 상실했습니다.

900명 중 단 2명만 생존

이 전투의 참혹한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인데파티거블호 승무원 900명 가운데 구조된 사람이 겨우 두 명뿐이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합니다.

공식 발표 없는 런던 해군성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영국 왕립해군은 창설 이래 최악의 패배를 당한 셈입니다. 그러나 런던 해군성은 아직까지 공식 성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소식은 대부분 독일 참모본부의 발표와, 시신과 부상자를 가득 싣고 항구로 돌아온 덴마크·네덜란드 어선들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환호와 런던의 무거운 침묵

독일 제국 총리는 함대 사령관에게 축전을 보냈습니다. 반면 조지 5세 국왕이 왕립해군의 젤리코(Jellicoe) 제독에게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독일 측의 축전에 비해 훨씬 절제된 어조였다는 전언이 있습니다.

전투의 무대와 경과

교전의 핵심은 노르웨이 남단에서 남남동쪽으로 약 125마일, 덴마크 해안에서 약 150마일 떨어진 해역에서 벌어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본격적인 교전은 오후 4시에 시작되어 어둠이 내려앉은 오후 9시경까지 이어졌고, 이후 밤새 산발적인 접전이 여러 차례 계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