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르됭 전투: 전세를 뒤집다

주도권을 잃어가는 독일군

연합군은 솜 전선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했고,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진격을 이어갔으며, 이탈리아군 역시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독일군은 베르됭 전선에서 병력과 포병 부대를 계속 차출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군 사령부로서는 베르됭에서 작전을 지속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팔켄하인의 마지막 승부수

1916년 7월 11일, 에리히 폰 팔켄하인(Erich von Falkenhayn) 장군은 마지막 공세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 공세는 베르됭 시가지에서 불과 3km 거리에 있는 수빌 요새(Fort Souville) 앞에서 격퇴되고 말았다. 이 순간부터 독일군은 전략적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프랑스군의 강력한 반격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군은 독일군 진지에 집중 포격을 퍼부었다. 약 40만 발에 달하는 포탄과 가스탄에 시달린 독일군은 결국 10월 23일 두오몽 요새(Douaumont)를 내주고 철수했다. 프랑스 포병은 관측된 적 포병 진지를 하나씩 정밀하게 파괴해 나갔다.

이어 10월 24일, 프랑스군 3개 사단이 폭 7km에 이르는 전선에서 총반격에 나섰다. 두오몽 요새는 성공적으로 탈환되었고, 무려 6,000명의 독일군이 포로로 잡혔다. 11월 2일에는 보 요새(Fort Vaux)마저 독일군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12월 중순, 독일군은 결국 전투 시작 당시의 위치까지 완전히 밀려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10개월에 걸친 참혹한 전투가 막을 내렸다. 베르됭 전투는 양측 모두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 최악의 소모전으로 기록되었으며, 프랑스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