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40 주요 제원
- 종류: 기관단총
- 작동 방식: 자동(연사)
- 구경 및 탄약: 9mm 파라벨룸 (9 × 19mm)
- 전장: 개머리판 접었을 때 63cm / 펼쳤을 때 83.3cm
- 총신 길이: 25cm
- 공란 중량: 4.03kg
- 탄창 장착 시 중량: 4.7kg
- 발사 속도: 분당 400~500발
- 탄창 용량: 32발
- 유효 사거리: 100~200m
- 초속: 380m/s

MP40의 탄생 배경
마시넨피스톨레 40(Maschinenpistole 40), 흔히 MP40으로 불리는 이 무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표적인 기관단총이다. 명칭의 숫자는 각각 채택 연도의 뒷두 자릿수를 의미하며, MP40은 그 전작인 마시넨피스톨레 38(MP38)의 후속 모델에 해당한다. MG34를 저렴하게 개량한 MG42와 마찬가지로, MP40은 MP38의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MP38과 MP40은 합계 120만 정 이상 생산되었다.
연합군 병사들은 이 무기를 독일의 총기 설계자 휘고 슈마이저(Hugo Schmeisser)의 이름을 따 '슈마이저(Schmeisser)'라고 불렀다. 슈마이저는 지난 대전에서 MP18을 개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MP38과 MP40은 에르푸르트의 게이펠 조병창(Erfurter Maschinenfabrik Geipel, ERMA)에서 하인리히 폴머(Heinrich Vollmer)가 설계한 것이다. 다만 그 기반이 된 MP36은 슈마이저가 실제로 개발하고 생산한 모델이기도 했다. MP40은 ERMA 공장 외에도 줄의 하에넬(Haenel)사와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Steyr)사에서 생산되었으며, 특히 슈타이어 공장의 생산량이 가장 많아 1944년 10월까지 생산이 지속되었다. 총 생산량은 약 74만 6천 정에서 110만 정 사이로 추정된다.
개발 과정과 생산 방식의 혁신
1930년대 말, 스페인 내전에서 그 유용성이 입증된 MP38은 국방군(베어마흐트)을 위해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대량 생산을 전제로 설계되어 원가 절감이 가능했다. 폴머는 무겁고 값비싼 나무 재질을 과감히 버렸고, 그 결과 MP38은 세계 최초로 강철 접이식 개머리판을 장착한 총기가 되었다. 이는 곧 다가올 전격전(블리츠크리크)에 대한 국방군의 요구 사항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MP38의 제조는 주로 절삭 가공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숙련된 노동력과 우수한 소재가 필수적이었고, 이는 품질 확보를 위한 추가 비용으로 이어졌다. 이후 판금 프레스 성형이나 점용접 같은 산업 기술이 도입되면서 생산 속도는 크게 향상되고 공정도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공정이 표준화되었음에도 MP40이라 불리게 된 이 무기의 제조 비용은 MP38보다 오히려 약간 더 높았고, 원자재 절약 효과도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였다.
혁신적인 설계 특징
MP38/40의 설계는 당시까지의 기관단총들과 비교해 혁신적이면서도 파격적이었다. 접이식 강철 개머리판 덕분에 무기의 취급성이 매우 뛰어났고, 값싸고 가공이 쉬운 베이클라이트가 목재를 대신해 몸체와 손잡이에 사용되었다. 무거운 조준기는 총기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어 조준 시 안정성을 높였다. 또한 이 총에는 단발·연사를 선택하는 화기 선택 스위치가 없어 '점사(burst)' 방식으로만 발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숙련된 사수가 짧은 시간 안에 한 발씩 조준 사격할 수 있게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MP40에는 총열 아래에 '코(nose)'라고 불리는 고리가 달려 있어 차량 차체 가장자리에 걸치고 사격함으로써 반동을 억제하고 조준을 안정화할 수 있었다(중세의 성벽 총기에서 이미 볼 수 있던 특징이다). 이 덕분에 사격 시 반동으로 인해 사수가 차량 안으로 밀려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
약점과 개선 노력
32발 들이 탄창은 이 무기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탄창 내부에서 탄약은 두 줄로 배열되어 있는 반면, 급탄은 탄창 상단에서 한 줄로 이루어진다. 두 줄이 한 줄로 합쳐지는 지점에서 먼지 등으로 인해 탄약이 서로 엉켜 끼이는 경우가 잦았고, 이는 작동 불량(잼)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후 등장한 MP40/1에서는 탄창 삽입부에 세로 홈을 파는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또한 초기형에는 노리쇠(shutter) 관련 안전 문제가 존재했다. 노리쇠를 고정할 수 없어 총기를 충격에 노출될 경우 탄환이 의도치 않게 약실로 들어가 오발이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이 결함은 1941년부터 양산에 적용된 노리쇠 고정 장치로 보완되었으며, 기존의 MP38과 MP40 대부분도 이 장치로 개조되었다.
파생 모델들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71발 드럼 탄창을 사용하는 소련의 PPSh-41과의 조우는 MP40/2 버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모델은 탄창을 이중으로 받는 구조를 갖추어, 첫 번째 탄창이 비면 밀어내는 것만으로 교체할 수 있어 재장전 없이 최대 64발을 연속 발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조가 너무 복잡하여 대량 생산에는 실패했다.
휘고 슈마이저는 전쟁 중 MP41을 설계했다. 이 무기는 MP40의 몸체와 노리쇠(기술적으로 사실상 동일)에 MP28의 목재 개머리판과 발사 기구를 결합한 것이었다. MP41은 주로 수출용과 경찰 부대용으로 생산되었다.
보급 현황
MP38은 처음에는 장갑차 승무원을 위해 고안되었으나, 뛰어난 취급성 덕분에 U보트 승무원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무장 부대의 무기로 자리 잡았다. 당시 기준으로 비교적 컴팩트한 이 무기를 통해 소규모 전투 부대도 상당한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MP38/40은 독일 보병의 핵심 무기로 평가받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역사적 사실보다 독일군의 MP40 보유 비율이 과장되어 묘사되곤 한다. 실제로 MP40은 주로 분대장과 소대장에게 지급되었고, 나머지 병력은 마우저 카르비너 98k(Kar98k)로 무장했다. 1939년 가을 폴란드 침공 당시 국방군에는 8,773정의 MP38이 배정되었으며, MP40이 도입되기 전까지 총 4만 정이 생산되었다.
총기 한 정에는 여섯 개의 탄창이 함께 지급되었다. 이를 위해 각 병사는 좌우 허리에 각각 탄창 세 개씩을 담는 탄창 주머니 두 개를 착용했고, 탄창 장전에 필요한 도구는 왼쪽 탄띠에 달린 작은 보조 가방에 수납했다. 특수한 경우에는 소음기도 함께 운용되었다.
전투 성능
MP40의 최대 사거리는 200m에 달한다. 분당 400~500발이라는 적당한 발사 속도 덕분에 동급의 다른 무기들보다 제어가 쉬웠다. 접이식 금속 개머리판을 갖추고 있었지만, 전방 손잡이(실제로는 탄창) 부분에 보호대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결함이었다. 집중 사격 후 병사들이 손을 데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유효 사거리 약 100m는 미국의 톰슨 기관단총(사거리 50m 남짓)에 비해 분명한 우위였다. 반면 소련의 PPSh-41이나 PPS-43처럼 더 빠른 구경의 탄환을 사용해 사거리가 긴 기관단총들에는 다소 밀렸다. 흥미롭게도 서부 전선에서 미군들이 자신들의 톰슨보다 노획한 MP40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동부 전선의 독일군 역시 소련제 PPSh-41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후속 무기에 끼친 영향
MP40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무기, 특히 자동 기관단총들의 설계 모델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 스웨덴 칼 구스타프 M/45 (1945년~)
- 유고슬라비아 자스타바 M56 (1956년~)
- 독일 자동소총 BD-38 (2005년~)
- 미국 M3A1 그리스건(1942년~)은 MP40과 영국의 스텐 양쪽에서 일부 설계 디테일을 차용했다.
또한 연합군이 점령된 유럽의 각지 레지스탕스 조직에 보낸 무기들은 적에게서 탈취한 MP40의 탄약(9mm 파라벨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개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의 스텐이나 미국의 유나이티드 디펜스 M42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MP40은 팔레스타인에서도 활약했다. 적에게서 노획한 대량의 무기가 이스라엘군의 전신이 될 부대의 무기고에 저장되었고, 1956년까지 MP40은 이스라엘 공수부대의 공식 무기였다. 놀랍게도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에도 이 진귀한 골동품들의 복제품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