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 몰타 공성전: 1,700회의 공습에도 굴하지 않은 지중해의 요새

지중해의 요충지, '로멜의 악몽'

시칠리아와 튀니지 사이,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몰타 섬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인 전략 요충지였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에르빈 롬멜 원수에게 '로멜의 악몽'이라 불릴 만큼, 이 작은 섬은 영국이 아프리카 전선을 장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공성전의 시작과 초기 방어

공성전은 이탈리아가 무너져 가던 프랑스와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이미 1939년부터 몰타에 레이더를 설치하며 선제적인 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섬을 지키던 것은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복엽기 3대, 즉 '페이스(Faith)', '호프(Hope)', '차리티(Charity)'라는 이름의 항공기들이었으며, 이들은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섬을 방어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를 향한 평화와 우호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곧이어 공습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타란토 공습의 발판

몰타는 단순한 방어 거점을 넘어 공격의 교두보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영국 정보기관은 이 섬을 기반으로 정찰기를 운용하며 타란토 항 공습 작전을 준비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1941년, 새로운 적의 등장

1941년에는 또 다른 적,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가 섬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롬멜과 아프리카 군단이 아프리카 전선에서 고전하던 이탈리아를 지원하면서 전세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추축국의 보급 체계에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바로 몰타입니다. 이 섬에 집결한 영국군은 추축국의 보급 선단을 끊임없이 공격했고(피에르 클로스터만의 저서 《하늘에서 내리는 불》 참조), 이는 북아프리카 전선 전체를 좌우했습니다.

이에 추축국은 섬에 대한 폭격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영국은 몰타에 배치된 전투기를 계속 증강했고, 왕립공군(RAF) 조종사들은 폭격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기지를 방어했습니다.

페데스탈 작전: 피로 얻은 보급선

몰타로의 보급은 극한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42년에는 무려 800여 대의 독일·이탈리아 항공기가 페데스탈 작전의 호위 선단을 공격했습니다. 항공모함 이글(Eagle)은 U보트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되었고, 출항한 약 15척의 선박 중 섬에 도달한 것은 불과 5척 남짓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심각하게 손상된 유조선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배는 폭격을 뚫고 세인트폴 만까지 예인되었습니다. 그 연료야말로 섬을 지키는 전투기와 폭격기의 생명선이었습니다.

조지 십자장: 용기에 대한 인정

추축국은 1,700회가 넘는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이 섬에 떨어진 폭탄의 총량은 영국 본토 항공전 전체 기간 동안 투하된 양보다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몰타 주민들의 의지는 끝내 꺾이지 않았습니다. 1942년 4월, 조지 6세 국왕은 몰타 요새의 모든 주민들의 용기와 결의를 기려 조지 십자장(George Cross)을 수여했습니다. 이 훈장은 현재까지 몰타 국기에 새겨져 있습니다.

1943년, 승리의 순간

1943년, 롬멜이 튀니지에서 철수하고 이탈리아가 쇠퇴한 끝에 마침내 항복하면서, 몰타 사람들은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3년 동안 자신들을 위협해 온 이탈리아 함대가 바로 그들 눈앞, 몰타의 항구에서 패배하고 항복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몰타 국민에게 바치는 경의

굶주림과 폭격, 침략의 위협 등 헤아릴 수 없는 위험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몰타 국민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은 지중해의 심장부에서, 그리고 역사의 한복판에서 하나의 섬이 지녀야 할 전통과 긍지를 지켜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