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15일부터 7월 9일까지,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최북단에 자리한 마리아나 제도의 최대 섬 사이판에서는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치러진 '사이판 전투'는 일본에게 있어 완전한 재앙이었습니다.
미군의 상륙과 일본군의 몰락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하자 전세는 급속히 기울었습니다. 포병의 엄호를 받는 화염방사기와 기관총 부대가 일본군이 숨어든 은신처와 동굴, 갱도를 하나씩 소거해 나갔고, 일본군은 밤마다 필사적인 반격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이판 상륙 작전이 시작된 지 불과 나흘 뒤 개시된 필리핀해 해전에서 일본은 해군 항공 전력과 항공모함 3척을 잃으며 크게 무너졌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사이판에 증원군과 보급품을 보낼 방법조차 찾지 못했고, 섬을 지키던 수비대의 운명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미국 악마'라는 선전이 만든 공포
일본의 선전은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미국 병사들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경고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사이판에 거주하던 일본인 민간인들이 섬이 함락되면 미국 악마들이 여성과 아이들을 강간하고 잡아먹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허 속으로, 수천 명의 비극
결국 모든 것이 끝났다고 판단한 1944년 7월 8일부터 12일 사이, 수천 명의 일본군 병사와 민간인이 섬 북쪽 끝의 절벽을 향해 행진한 뒤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미군은 이를 막으려 애썼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예외적인 인물도 있었습니다. '사이판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 불린 가이 가발돈(Guy Gabaldon)은 미국인이 야만인이 아니라고 직접 설득하여 1,000명이 넘는 일본인을 항복하게 만들어 죽음에서 구해냈습니다.
사이판 전투와 점령 과정에서 일본인 사망자는 약 3만 명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거의 9,000명이 두 곳의 절벽에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섬 북단, 미군의 진격에 몰려 일본인들이 피신해 있던 라데란 바나데로(Laderan Banadero)와 반자이 절벽(Banzai Cliff)입니다.

자살 절벽(Suicide Cliff)
라데란 바나데로는 1944년 3월 일본 제국 해군이 건설한 마르피 포인트 비행장 바로 위에 위치하며, 해발 220미터의 높이를 자랑합니다. 당시 목격자들은 절벽 아래에서 시체가 띠를 이룬 듯 늘어선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고, 어떤 이들은 그 수가 수천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이곳은 '자살 절벽(Suicide Cliff)'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자이 절벽(Banzai Cliff)
반자이 절벽은 자살 절벽과 매우 가까운, 비행장 한쪽 끝에 자리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기서 뛰어내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죽지 않았고, 미군 함선에 의해 구조되거나 포로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추모의 현장이 된 절벽
1976년 두 장소는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공원에 포함되었으며, 현재는 일본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의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약 3.6헥타르 규모의 이 지역은 미국 국립 사적지 등록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도 등재되었습니다.
두 절벽에는 각각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반자이 절벽 연안 전체에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점점이 늘어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