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깜짝 놀랄 만한 포로 포획 — 튀니지 전역의 종막

깜짝 놀랄 만한 포로 포획 — 튀니지 전역의 종막

동부로의 진격, 연결 작전 완성

5월 12일 저녁부터 13일 낮에 걸쳐 오랑(Oran) 사단과 알제(Alger) 사단은 동쪽으로 강력한 분견대를 밀어붙였고, 마침내 무장 도시(Armed City)의 영국군·프랑스군과의 접촉을 완성해 나갔다.

알제 사단에서는 코네(Conne) 장군이 12일 지리바(Zriba)-부피샤(Bou-Ficha) 축선을 따라 라투르(La Tour) 대령이 이끄는 모로코 타보르 부대로 구성된 추격 분견대를 출발시켰다. 지리바 마을은 그날 저녁 함락되었으나, 이탈리아 제125보병연대(키아라몬티 Chiaramonti 대령 지휘)는 탁월한 저항을 보여주며 마을을 내려다보는 제벨 지리바(Jebel Zriba) 고지를 다음 날 오후 1시 10분까지 끝까지 사수했다. 그제야 추격 분견대는 부피샤에서 영국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오랑 사단 방면에서는 생트마리듀지트(Sainte-Marie-du-Zit)에서 출발한 르쿠퇴룩스(Le Couteulx) 기갑 부대가 13일 정오에 드제라두(Djeradou)에 도달하여, 라르미나(Larminat) 장군의 자유 프랑스 제1사단(1re D.F.L.)과의 접촉을 성립시켰다.

깜짝 놀랄 만한 '포획'들

양 사단 모두에서 이러한 진격은 감탄을 자아내는 포획 전과와 함께 이루어졌다. 오랑 사단에서는 12일 밤부터 13일 새벽 사이, 생트마리듀지트의 부아소(Boissau) 장군 지휘부에 최고위급의 군사 교섭단이 찾아왔다. 바로 메세(Messe) 장군—구 롬멜 군을 이어받은 이탈리아 제1군 사령관—의 참모장 만치넬리(Mancinelli) 장군과, 해당 군 예하 독일 부대를 대표하는 마케르트(Mackert) 대령이었다.

알제 사단에서도 이탈리아 제21군단('스페치아'·'피스토이아' 사단 및 독일 제164보병사단으로 편성)의 참모부장이 사단 추격 분견대에 직접 항복 의사를 밝혔다.

추격 분견대 소속인 제59 구무(Goum) 부대는 도로 위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가득 실은 축국군 트럭 약 200대 규모의 종대를 그대로 붙잡았다. 13일 단 하루 동안만 후방으로 약 6,000명의 포로가 이송되었다.

자그우앙(Zaghouan), 침묵한 거목

한편 알제 사단은 자그우앙 남쪽 사면 앞, 사우아프(Saouaf)로 통하는 도로 위에서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포격 세례 없이는 건널 수 없던 이 계곡에는 이제 놀라울 만큼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다. 병사들은 자그우앙의 남쪽 기둥인 제벨 레리(Leri)를 바라보았다. 불과 나흘 전인 5월 10일 정오, 부바티에(Bouvattier) 대대(III/9 R.T.A.)의 공격이 좌절했던 바로 그 능선이었다.

5월 12일 저녁, 즉 이틀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자그우앙의 웅장한 산봉우리를 올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해발 1,295미터의 정상에서 적 포병 관측병들은 계곡과 골짜기 어디든 손수 겨냥하듯 포탄을 떨어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그우앙에게 다 보인다!"라고 우리는 서로를 다독이곤 했다. 대포가 잠잠해지고 무기가 내려놓아진 지금, 현지에서 휴식 중인 우리 산병들은 산괴를 따라 여러 갈래 오솔길로 내려오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긴 행렬을 멀리서 지켜본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달아나는 쥐떼처럼.

'불패' 아프리카 군단의 최후

다음 날인 5월 13일, 쾰츠(Koeltz) 장군의 제19군단이 집계하게 될 총 34,500명의 포로 가운데 약 15,000명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이 이미 뜨거운 태양 아래, 폰듀파(Pont-du-Fahs)의 작고 파괴된 역 뒤편 철조망으로 대충 에워싸인 넓은 마른 들판에 모여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그 유명한 '불패의'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의 잔당이었다.

모니에콩드루아예(Maunier-Condroyer) 대령은 황량한 제벨 위에서 겨울 바람과 비를 맞으며 수개월간 싸워 온 제9 R.T.A.의 장교와 산병들을 모조리 이 광경 앞으로 데려왔다. 수많은 고난과 희생 끝에 얻어낸 결과물을 그들 스스로 눈으로 확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튀니지 전역이 끝났습니다"

5월 13일 오후 1시, 자그우앙의 암반이 아프리카에서 울린 마지막 포성을 메아리치고 몇 시간이 지난 뒤, 알렉산더(Alexander) 장군은 윈스턴 처칠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발신할 수 있었다.

총리각하, 튀니지 전역이 종료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적의 모든 저항이 중단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북아프리카 연안의 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