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롱스톱 힐 앞의 크리스마스 – 튀니지 전역을 결정짠 혹독한 겨울

롱스톱 힐 앞의 크리스마스 – 튀니지 전역을 결정짠 혹독한 겨울

긴 겨울이 남긴 좌절의 기록

이 기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길고 혹독했던 겨울이 연합군에게 안겨 준 좌절과 고난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1942년 11월 말, 영국군이 감행한 튀니스 돌파 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진 12월에는 프랑스군이 도르살 산맥(Dorsale) 축선에서 펼친 공세가 무산되었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영국군이 '롱스톱 힐(Longstop Hill)' 앞에서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롱스톱 힐'이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긴 정지(long stop)'를 뜻한다. 메제르다 계곡과 튀니스로 향하는 길목을 굽어보는 이 언덕은 튀니스 진격의 관문이었지만, 연합군의 발걸음은 바로 그곳에서 무려 다섯 달이나 멈춰 섰다. 실제로 이 언덕이 연합군 손에 완전히 넘어온 것은 1943년 4월, 전역 막바지에 가서야 가능했다.

티거 전차의 반격과 카세린의 위기

1943년 1월에는 독일군의 '티거(Tiger)' 중전차들이 우셀티아(Ousseltia) 방면으로 몰려와 모로코 사단을 강하게 압박하며 프랑스군 전선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2월에는 더 큰 위기가 닥쳤다. 에르빈 롬mel이 이끄는 기갑 부대가 스베이트라(Sbeïtla) 앞 미군 방어선을 돌파해 카세린(Kasserine) 협곡과 탈라(Thala)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이른바 '카세린 협곡 전투'로 불리는 이 공세로 인해 연합군의 튀니지 전 방어선이 통째로 붕괴할 뻔했다.

위기를 넘긴 두 가지 변수

승부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알 수 없었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상황은 오직 두 가지 요인 덕분에 만회될 수 있었다. 하나는 탈라 앞에 급파된 영국 기갑여단의 결사적인 저항이었고, 다른 하나는 롬멜이 마레트(Mareth) 방어선을 지나치게 경계한 것—아마도 시기상조였던—경계심이었다. 이 두 요소가 맞물리며 추축국의 공세는 정점에서 꺾이고 말았다.

열 주 후, 극적인 반전

그런데 놀랍게도 불과 열 주가 지난 뒤, 이 전역의 운명은 완전히 뒤집혔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두 강력한 군이 연합군 앞에 완전히 항복했고, 포로로 잡힌 추축국 병사의 총수는 무려 25만 명에 달했다. 크리스마스의 롱스톱 힐 앞에서 좌절했던 연합군에게, 1943년 5월의 튀니지는 눈물겨운 승리의 현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