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크레타 침공 초일: '메르쿠르 작전'의 시작

크레타 침공 초일:  메르쿠르 작전 의 시작

직전까지 계속된 준비 문제

작전에는 약 300만 리터의 휘발유가 필요했지만, 시작을 사흘 앞두고 예정된 유조선이 코린토스 운하 한가운데 좌초된 잔해에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통로를 뚫기 위해 킬(Kiel)에서 소해 잠수 요원들을 찾아 나섰고, 이후 휘발유는 200리터짜리 드럼통에 담겨 출발 비행장에서 수동 펌프로 Ju 52의 연료탱크에 직접 주입되었다.

소박하지만 튼튼한 기체인 Ju 52는 만재 이륙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면을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 흙길을 정비하기 위해 현지 노동력이 징용되어 대충이라도 길을 다듬었다. 실제로 5월 20일 제2차 웨이브가 이륙할 때 비행기들이 일으킨 먼지 구름은 무려 150미터까지 치솟았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메르쿠르(Merkur)" 작전은 준비를 마쳤다. 슈투덴트(Student) 장군은 장교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작전의 주요 골자를 환기시켰다. 훗날 제3낙하연대장 F.A. 폰 하이데(F.A. von Heydte)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 계획은 분명히 그의 개인적인 계획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것을 구상했고, 강한 반대에 맞서 받아들여지도록 싸웠으며, 이후에는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다듬었다. 우리 모두는 이 계획이 그 자신의 일부, 곧 그의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믿었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았다."

5월 19일, 최후의 브리핑

5월 19일 오후는 새로운 브리핑으로 채워졌다. 브리핑은 아테네 그랑드 브르타뉴 호텔(Hôtel de la Grande Bretagne)의 화려한 연회장에서 열렸다. 장교들은 탄약 배급, 분대장들에게 배포할 지도 준비, 낙하 장비 점검 등을 지휘했다. 병참은 맥주와 슈냅스까지 잊지 않아, 결전의 전야를 보내는 동안 병사들의 사기는 끝내 높게 유지되었다.

5월 20일 아침, 하늘이 병기로 덮이다

크레타 섬의 5월 20일 아침은 꽤 쌀쌀했다. 독일군 항공기들은 여느 때처럼 정확하게 오전 7시 공습을 위한 집결점에 도착했다. 30분 뒤, 칸니아(Chania)와 수다 만(Souda Bay)에 대한 새로운 공습이 평소의 일과를 깨뜨렸다. 방공을 담당한 소수의 보포스(Bofors) 대공포 위로 하늘은 마치 비행기 구름으로 덮인 듯 보였다. Ju 88, 이어서 Ju 87이 목표물을 쏟아붓듯 폭격했고, Me 109가 초저공 비행으로 기관총을 쏘며 마무리 작업을 완수했다.

8시, 갑작스러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불타오르는 화염의 연기 속에서, 폭탄 폭발로 일으켜진 먼지 구름 사이로 최초의 글라이더들이 지상 몇 미터 상공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제1강습연대 병력을 실은 것으로, 말레메(Maleme) 지역에서의 임무는 잔존한 대공포를 무력화하고 활주로를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인 107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일부 글라이더는 바로 이 언덕 기슭에 착륙했고, 나머지는 해안 강 타브로니티스(Tavronitis)의 마른 강바닥에 내려앉았다.

'프리즌 밸리'의 참사

칸니아 방면에서는 글라이더들이 인근 계곡, 즉 섬 유일의 감옥이 있어 '프리즌 밸리(Prison Valley)'라고 불리는 곳과, 아크로티리(Akrotiri) 반도의 중대공포 진지 바로 위에 강하했다. 착륙 과정의 손실은 매우 컸는데, 그 원인은 한편으로는 방어군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착륙장 선정의 실패 때문이었다. 항공 사진만을 근거로 선택된 프리즌 밸리는 실제로는 암석 덩어리들로 뒤덮인 곳이었고, 수많은 글라이더들이 이에 충돌해 파괴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글라이더들이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두 번째 웨이브인 낙하산 부대원들의 강하가 시작되었다.

방어군의 눈에 비친 낙하산 부대

제23 뉴질랜드 대대의 토머스(Thomas) 중위에게 이 광경은 걱정보다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크레타의 짙푸른 하늘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수십 송이의 알록달록한 꽃잎 같은 낙하산들은 언뜻 보기에는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 전역으로 단련된 제23대대 병사들은 이 알록달록한 '발레'가 단순한 눈요기를 위한 것이 아님을 재빨리 깨달았다. 낙하산 줄 끝에 매달려 있는 병사들에게 선의의 의도가 있을 리 없었고, 이 순간 그들은 기묘할 정도로 무방비해 보였다. 지금이야말로 이 기회를 이용해야 했다.

사격이 격화되면서 꽃잎에 매달린 인형처럼 보이던 병사들은 총탄의 충격에 흔들리더니, 바람에 버려지듯 하나둘 쓰러져갔다. 착륙한 후에도 낙하산 부대원들은 한동안 계속 취약한 상태로 남았다. 그들은 하네스에 엉켜 움직이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응사할 수 있는 무기란 개인 화기인 기관단총과 권총뿐이었는데, 이들의 유효 사거리가 너무 짧아 영국 보병의 화망에 명백히 불리했다. 이렇게 제1강습연대의 상당수 병력은 컨테이너에 아직 봉인된 중화기를 사용해 보기도 전에 쓰러졌다.

첫날의 결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날의 평가는 독일군에게 유리했다. 제1차 웨이브 병력의 대다수는 비교적 신속하게 재집결하는 데 성공했고, 심지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부대까지 편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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