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감옥 계곡의 함정: 크레타 공수 작전 첫날의 혼돈

감옥 계곡의 함정: 크레타 공수 작전 첫날의 혼돈

말레메 활주로 서쪽과 타브로니티스 다리 주변에서는 글라이더에서 내린 병력들이 낙하산 부대와 합류하여 마른 강바닥에 진지를 구축했다. 한편 감옥 계곡(Prison Valley)에는 대규모 병력이 저항 없이 성공적으로 착륙했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이 좁은 계곡은 언제라도 그들을 가둘 수 있는 함정이 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착륙 부대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처음에는 막연하고 불분명했으며, 스튜던트(Student) 대장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항공 정찰을 요청해야 했다. 말레메와 하니아에서 받아들인 보고는 밝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작전에 깊이 투입된 상태여서 계획의 후속 단계를 재검토할 여유가 없었다.

제2파 강습, 레티문노와 헤라클리온으로

그리하여 두 번째 강습 물결이 크레타로 향했다. 그러나 레티문노와 헤라클리온에서 벌어진 전투는 '메르쿠르' 작전 전체를 실패로 몰아넣을 뻔했다.

호주 보병 2개 대대는 도로와 활주로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참호를 파고 레티문노 외곽을 굳건히 사수하고 있었다.

5월 20일 오후까지 제2차 강습 물결의 낙하산병 1,500명 중 3분의 1이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고, 생존자들은 조직력을 잃은 채 소규모 집단으로 흩어졌다. 호주군은 활주로를 장악한 상태였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목표인 레티문노 시내로 향하던 낙하산 부대들은 그리스 헌병대의 공격마저 받았다.

헤라클리온, 예상 밖의 강력한 저항

헤라클리온은 영국군과 호주군의 혼성 부대가 방어하고 있었다. 사전 폭격은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당수 부대가 독일군의 마지막 항공 정찰 이후에 진지를 구축했기 때문에 독일군의 표적 명단에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낙하산병들은 착지하자마자 영국군 자동화기의 표적이 되었고, 비행장 주변에 잘 배치된 블랙 워치(Black Watch) 저격수들은 각 분대가 강하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집중 사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작전 시간표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형 편대에 의한 대량 강하 대신, 고립된 Ju.52 수송기들이 각각 분대별로 강하 지역에 병력을 투하한 것이다. 적이 전차와 브렌(Bren)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독일 낙하산병들의 경악은 컸다.

중장비를 실은 수송용기의 중요성을 빠르게 간파한 블랙 워치는 이를 회수하려는 낙하산병들을 끈질기게 추격했다. 제1낙하산연대 제2대대의 부르크하르트(Burckhardt) 대위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이토록 격렬한 저항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요새로 몰린 낙하산병들

그럼에도 헤라클리온 서쪽에 강하한 낙하산병 일부는 시 외곽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호주 제4연대 제2대대, 제2레스터 연대, 제2요크 앤드 랭커스터 연대의 집중 포화 아래 놓였다. 그리스군과 영국군은 이들을 일부 도시 밖으로 내몰았고, 나머지는 항구를 지켜왔던 옛 베네치아 요새 안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스튜던트에게 돌아온 전황

5월 20일 오후, 고장 난 송신기를 수리하면서 스튜던트는 마침내 감옥 계곡과 말레메의 부대들과 통신을 재개했다. 그는 말레메에서 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마인들(Meindl) 장군이 부상당했다는 소식, 그리고 감옥 계곡에 착륙한 부대들이 하니아 방면으로 돌파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했다는 보고를 접했다. 해 질 녘에는 헤라클리온 공격이 실패했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레티문노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방어 측에게도 길고 힘든 하루였다. 정보는 전령을 통해 전달되었는데, 모든 도로가 독일 전투폭격기의 끊임없는 위협 아래 있었던 만큼 이는 위험하고 불확실한 방법이었다. 영국 지휘부는 독일군이 증원을 받기 전에 반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많은 장교들은 여전히 대규모 해상 상륙이 곧 있을 것이라 믿었고, 적이 이미 거의 모든 공수 병력을 투입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언덕 107과 앤드루 중령의 결단

5월 20일 밤이 내려앉을 무렵, 뉴질랜드군은 여전히 말레메 활주로를 내려다보는 언덕 107(Hill 107)을 사수하고 있었다. 오후 5시, 제22대대를 지휘하는 L.W. 앤드루(Andrew) 중령은 타브로니티스 다리 근처에 자리잡은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반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의 병력은 너무 흩어져 있어 두 대의 전차가 지원하는 단 하나의 소대만을 규합할 수 있었다. 두 대의 전차는 고장 나 파괴되었고, 반격은 적에게 혼란을 주었지만 적을 진지에서 몰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말레메와 감옥 계곡과의 무선 통신 복구 덕분에 스튜던트는 이 시점부터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반면 그 지역의 뉴질랜드군은 바로 옆 부대와조차 연락이 두절된 고립 상태였다. 반격이 실패한 후, 앤드루는 다음 날 아침 압도적으로 우세한 독일 지상군과 항공력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지시를 요청하는 전령을 보냈으나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고, 결국 언덕 107에서 대대를 철수시키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