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할힌골 전투 1939년: 일본 총리의 사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소련의 예방 조치

1939년 9월 1일, 히틀러는 기갑사단을 이끌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할힌골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 기갑부대가 새로운 소련-폴란드 국경 방향으로 트랜스시베리아 철도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단순한 예방 조치였다.

일본을 덮친 배신감, 그리고 총리의 사임

히로히토(쇼와 천황)는 군사적 참패라는 충격 그 이상을 감당해야 했다. 독소 불가침 조약, 즉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은 일본인들보다 더 놀라워한 이는 없었다. 당시 일본은 독일과 반코민텐 협정을 확대하는 군사 동맹을 협상 중이었기 때문에, 이 조약은 믿을 수 없는 약속 파기처럼 보였다. 히라누마 기이치로 총리는 부끄러움에 못 이겨 사임서를 제출했다.

천황이 듣지 못한 히틀러의 경멸

만약 히로히토가 며칠 전 히틀러가 장군들에게 내뱉은 경멸 섞인 말을 들었더라면, 훨씬 더 큰 충격과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저 일본 천황… 그는 나약하고 비겁하며 결단력이 없다… 우리는 주인의 종족이다. 저 사람들은 그저 예의 바르기만 한 원숭이의 절반쯤 되는 존재다. 저들은 회초리를 정말 맛볼 필요가 있다!"
히틀러의 눈에 일본의 패배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동맹에게 버려진 천황, 그러나 의외의 결과

할힌골 사태가 히틀러의 대러시아 침공 성공에 대한 확신을 흔들지 않았다면, 일본은 결코 그런 자신감을 공유하지 않았다. 히로히토는 동맹국들에게 버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사태의 결과가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일본 제국 육군 내부에서 '북진론'은 완전히 신뢰를 잃고 몰락했다. 관동군은 체면을 세우기 위해 새로운 공세 개시를 허가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번에는 천황이 흔들림 없는 거부권으로 막아섰다. 모스크바에서는 외교관들이 주도권을 잡았고, 상황은 다시 현상 유지로 되돌아갔다.

휴전과 일소 중립 조약, 남진으로의 전환

1939년 9월 15일 휴전이 체결되었고, 이어 1941년 4월에는 소련-일본 중립 조약이 맺어졌다. 이로써 극동 러시아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야망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게 되었다.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미국 선박들이 소련 국기를 달고 미국 서해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아무 탈없이 항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제 남쪽을 향해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