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 전력을 상실한 일본 연합함대
사령부를 트럭 섬에 두었던 고가 제독의 일본 연합함대는 마셜 제도 전역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함대 사령관이 섬들의 병력을 보강할 여력은 거의 없었다. 지난해 11월 라바울 상공에서 항공모함 기동 부대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비행갑판이 텅 빈 항공모함으로 미국 함대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섬에 배치된 육상 항공기를 통한 마셜 제도 방어 역시 새로운 증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스프루언스 제독 휘하의 조종사들은 지상에서 파괴하지 못한 적기 약 150대를 모두 격추해 버렸다. 결국 콰잘레인의 방어는 해안에 주둔한 수비대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87개 섬에 흩어진 약 9,000명의 병력이 그 전부였다. 이 가운데 전투 요원은 절반에도 못 미쳤고, 나머지는 일본인·한국인·오키나와인 출신 노무자들로서 전투 경험이 사실상 전무했다.
압도적인 미군의 전력
일본군의 상대적인 열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스미스 소장이 지휘하는 미군 제5수륙양용군단은 총 63,000명의 돌격 및 예비 병력을 갖춘 거대한 전력이었다. 모든 병사는 다가올 임무를 위해 철저히 훈련된 상태였다.
남·북 양방향 공격 부대의 출항
하와이 제도에서 충분한 훈련과 리허설을 마친 터너 제독의 남부 공격 부대는 1월 19일 출항했다. 정규 절차에 따라 속도가 느린 상륙정들이 먼저 떠났고, 약간 늦게 신속 수송선들이 출발해 같은 시각에 집결지에 도착하도록 계획되었다.
북부 공격 부대는 그로부터 14일 전에 샌디에이고를 출발했었다. 지휘관은 콘올리 해군 소장으로, 태평양 전선에는 새로 온 인물이었지만 시칠리아 전역에서 활약한 베테랑이었다. 제4해병사단은 출항 전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리허설을 거쳤다.
속도가 빠른 항공모함의 선제 공습
터너의 함선들이 콰잘레인으로 집결하는 동안, 속도가 빠른 항공모함들은 마셜 제도의 적 기지들을 공격했다. 넷의 그룹으로 나뉜 '헬캣' 전투기와 '어벤저' 폭격기 조종사들은 1월 29일 임무를 시작해 1월 30일에 끝냈다. 웟제, 말로엘랍, 콰잘레인, 로이, 에니웨톡이 그들의 공습 대상이었다.
마주로 무혈 점령, 플린트록 작전의 서막
본 공연에 앞서 여는 막간극처럼, 마주로는 '플린트록 작전'에 앞서 진행되었다. 힐 제독은 해병대 정찰 중대와 제106보병연대 일부를 지휘했으며, 여기에 항공모함과 지원 함선들의 강력한 지원까지 더해져 어떤 혹독한 상륙 작전이라도 성공시킬 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해병대원들은 1월 30일 저녁 고무 보트를 타고 환초의 여러 섬 중 하나에 상륙했다. 그러나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일본군은 몇 주 전 이미 섬을 철수한 뒤였고, 한 명의 장교만 남아 있었는데 그는 곧 포로가 되었다.
그리하여 1월 31일 오전 9시 55분, 다릿 섬에 미국 국기가 게양되었다. 이곳은 전쟁 전 일본이 소유했던 영토 가운데 연합군의 손에 넘어간 최초의 땅이었다. 힐 제독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배들을 라군 안으로 진입시켰고, 병력은 즉시 상륙을 시작했다. 활주로 건설이 곧바로 착수되었고, 불과 일주일 만에 마주로는 제5함대의 주요 급유 기지로 사용될 훌륭한 해군 기지로 탈바꿈했다.
콰잘레인 공격 계획
콰잘레인 환초에서도 예정된 두 개의 공격에 같은 계획이 적용될 예정이었다. 1월 31일 아주 이른 아침, 터너와 콘올리는 소규모 정찰 부대를 상륙시켜 거대한 라군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작은 섬들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어서 연대급 부대가 주도하는 강력한 돌격이 이어져, 포격으로 콰잘레인과 로이-나무르 지구를 압박할 수 있는 위치의 섬들을 점령하는 것이 임무였다.
“모조리 쓸어버려” — 콘올리 제독의 별명의 탄생
이날 콘올리 제독은 훗날 유명해질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 별명은 하필 그 자신이 예비 포격 중에 스스로 붙인 것이었다. 기함 애팔래치안호에서 그는 킹(King) 지역을 두들겨 패던 함선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메릴랜드호가 오늘 오후 대포병 사격과 벙커 제압 사격을 위해 정말 가까이 접근해 주기를 요청한다.”
'올 어게인스트(All Against)' 콘올리가 이끈 이 예비 포격은 함포 사격과 항공 폭격 두 분야 모두에서 파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투가 끝난 뒤 전황을 총괄한 슈미츠 장군에 따르면, 포탄과 폭탄은 수비대의 절반 이상을 쓰러뜨렸다고 한다. 적의 핵심 연안 포병 화기는 모두 이 지옥 같은 포격으로 완파되거나 사용 불능 상태가 되었다.
상륙의 시행착오, 그리고 목표 달성
이날 상륙 작전에서 드러난 유일한 결점은, 수가 너무 적어 큰 위협이 되지 못한 적이 아니라 강한 역류, 특히 험준한 암초 장벽, LVT와 LST 승조원들의 미숙함 등 여러 우연한 상황이 겹치면서 빚어진 혼란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수륙양용 차량이 손상되거나 고장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예비 목표는 달성되었다. 75mm와 105mm 곡사포 4개 그룹이 제때 해안에 배치되어 주공을 지원할 수 있었고, 라군으로의 접근로는 이제 확실히 확보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