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7월 30일,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중앙집단군(G.A. Center)에게 방어 전환을 명령했다. 이 시점에서 소련군은 벨리키예루키—얄체보—크리초프—즐로빈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에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모스크바 진격의 좌절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돌파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모스크바 점령은 바르바로사 작전의 핵심 목표였기에, 이 좌절은 독일군 전략 전반에 큰 타격이 되었다. 서부 전선은 그 후 두 달 동안 안정세를 유지했고, 소련군은 단순히 방어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일련의 공세 작전을 감행했으며, 그중 하나인 옐냐 공세는 9월 초에 시작되었다.
'카튜샤'의 첫 실전 투입
스몰렌스크 전투 중이던 1941년 7월 15일, 소련군은 처음으로 새로운 무기를 실전에 투입했다. 바로 제트 포병, 즉 유명한 '카튜샤(Katyusha)' 로켓포였다. 짧은 시간에 다량의 로켓탄을 쏟아붓는 이 무기는 독일군에게 심리적 충격을 안겼다. 이후 카튜샤는 대규모로 운용되며 종전까지 독일군 진영에 공포와 죽음을 뿌려대는 상징이 되었다.
소련 근위대의 탄생
스몰렌스크 전투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겼다. 바로 소련 근위대(Soviet Guard)의 창설이다. 방어전에서 용맹함과 조직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공세에서 영웅적 기개와 과감함을 보여준 네 개의 보병 사단이 근위 사단으로 재편되었다. 이후 소련군 최정예 부대에는 '근위'라는 명예 칭호가 수여되는 전통이 확립되었으며, 이는 붉은 군대의 사기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