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흔들리는 방어선: 프로방스 상륙 작전 전야의 독일군

흔들리는 방어선: 프로방스 상륙 작전 전야의 독일군

텅 빈 프로방스, 남은 것은 '유령' 사단뿐

이 지역에 남아 있던 독일군 중 유일하게 전력으로 인정할 만한 부대는 툴루즈-카르카손-알비 삼각지대에 주둔하던 제11기갑사단 '게슈펜스트(Gespenst, 유령)'였다. 그러나 제19군 참모장 발터 보슈(Walther Botsch) 장군에게 이 기갑부대의 가치는 의문스러웠다. 국방군의 모든 기갑부대가 그랬듯 이들 역시 아돌프 히틀러의 직접 지휘를 받았고,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이후에는 그나마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결재 속도마저 더욱 느려졌기 때문이다.

보슈가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은 겨우 6~7개 사단에 불과했다. 부상자와 전쟁에 지친 베테랑, 다른 전선에서 밀려온 생존자, 그리고 믿음직하지 못한 전 러시아 포로와 폴란드인들로 구성된, 작전 가치가 낮은 2선급 부대들이었다. 사실상 이것이 프로방스에 남겨진 독일군의 전부였다. 정예 부대는 연합군의 공세를 막기 위해 노르망디로 보내진 상태였다. 완편된 보병사단 4개, 다른 2개 사단의 주력, 기갑사단 2개, 그리고 항공기 200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력이 그쪽으로 이동했다. 훗날 처칠이 지적했듯, '오버로드' 작전이 '드라군' 작전을 도운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던 셈이다.

지중해를 채운 연합군의 대군단

1944년 7월 말과 8월 초, 약 1,000척의 함선, 5,000대가 넘는 항공기, 약 20만 명의 병력이 집결하면서 지중해의 항구와 해역은 발칵 뒤집혔다. 나폴리, 브린디시, 오랑, 코르시카는 500척의 수송선에 승선할 병력으로 붐볐다. 전함 6척, 순양함 21척, 구축함 100척, 항공모함 9척의 호위를 받는 연합군 상륙 함대는 서지중해에 집결했고, 연합군 항공력의 주력인 2,100대가 넘는 항공기는 코르시카의 14개 비행장에 모였다.

15주간의 폭격, '너트메그 작전'

이 강력한 항공 전력, 즉 미 육군 항공대 37개 중대(B-25, A-20, P-38, P-47), 영국 왕립공군(R.A.F.) 11개 중대, 프랑스 전투기 4개 중대가 상륙 예정 해안의 전방과 후방, 그리고 해안 그 자체에 첫 타격을 가했다. '너트메그 작전(Operation Nutmeg)'이라 불린 이 공세는 4월 28일에 시작되어 8월 4일에 한층 강화되었고, 상륙 당일 오후 3시 30분경까지 이어졌다.

이 15주 동안 연합군 항공부대는 부두와 항만 시설, 철도, 도로, 교량, 잠수함 기지, 레이더 기지, 비행장, 포대, 방어 요새는 물론, 독일군의 프로방스 방어에 기여할 만한 모든 거점을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1만 회에 달하는 출격 동안 투하된 폭탄은 1만 2,000톤을 넘었다.

8월 7일의 공습에서는 니스와 몽펠리에 사이 310km 해안선이 폭격기 300대의 공격을 받았다. 8월 11일에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레이더 기지가 표적이 되었다. 8월 6일과 11일 두 차례의 공습으로 툴롱에는 총 560톤의 폭탄이 투하되어 정박해 있던 독일 잠수함 8척 중 4척이 침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