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대서양을 채운 U보트: 영국 해군성이 직면한 잠수함 함대의 위협

대서양을 채운 U보트: 영국 해군성이 직면한 잠수함 함대의 위협

증강되는 독일 잠수함 전력과 히틀러의 봉쇄 선언

영국 해군성은 수백 척의 신형 잠수함이 독일에서 건조 중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현재 존재하는 잠수함의 숫자는 앞으로 도래할 함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전쟁이 시작되기 전, 카를 되니츠(Karl Dönitz) 제독은 잠수함전에 관한 저서에서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300척의 추가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추산한 바 있었다. 전투 손실, 승무원의 훈련과 휴식, 정비와 수리 기간 등을 감안하면 이는 결국 총 900척 규모의 잠수함 전력을 의미하는 수치였다.

이 저서는 자연히 수많은 영국 해군 장교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그중 누구도 독일이 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히틀러는 1940년 8월 17일, 영국 본토에 대한 완전 봉쇄를 단행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중립국 선박마저 침몰시키겠다고 경고하면서, 그는 바로 이 잠수함 작전을 통해 전쟁의 승패를 가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1940년, 만족스럽지 못한 교환 비율

1940년이 끝날 무렵 독일은 총 22척의 U보트를 잃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 해군성이 확인한 것은 16건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6척은 사고나 원인 불명으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문제는 독일의 막대한 건조 계획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교환 비율'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간 통계를 살펴보면, 독일이 잠수함 한 척을 잃을 때마다 연합국은 약 10만 톤에 달하는 상선을 상실하고 있었다. 전쟁의 최종 귀추가 달려 있던 대서양 해전에서 승리하려면 영국과 동맹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는 처지였다.

호송선단, 다시 한번 찾아온 희망

그럼에도 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들어 호위함들의 작전 반경이 점차 대서양 한가운데로 확장되었고, 아이슬란드 기지가 정상 가동에 들어가면 한층 더 큰 전진이 가능해질 전망이었다. 여기에 신형 호위함들이 잇달아 취역하면서, 머지않아 호송선단이 대양 전 구간에 걸쳐 호위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되었다.

해군성은 역사의 교훈을 잘 알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과 1918년, 호송선단(convoy) 제도야말로 독일 잠수함을 꺾은 결정적 무기였다. 런던에서는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재현되기를 기대했다.

잠수함만이 적은 아니었다

상선 손실의 원인이 오직 잠수함뿐이었다면 이를 억제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했다. 상당수의 손실은 전혀 다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로 동해안 연안 호송선단과 영국 해협을 공격한 독일 공군은 1940년 한 해 동안 총 58만 톤에 달하는 선박 192척을 격침시켰다. 같은 해 기뢰는 201척(51만 톤)을, 어뢰정은 23척(약 4만 8천 톤)을 바닷속에 가라앉혔다.

다행히 이렇게 침몰한 선박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소형이었고, 연안 무역에 투입되던 선박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건조를 통해 비교적 쉽고 빠르게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합산하면 총 손실량은 100만 톤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였다. 영국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잠수함전이 아니라, 공중과 바다, 해저를 아우르는 총력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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