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세기 러시아 연극: 고골에서 체호프까지, 무대 위의 변혁

19세기 전반부의 러시아 연극은 외국 문화의 영향에서, 그리고 5막 구성이나 엄격한 예법 같은 고전적 규범에서 벗어나 해방을 향해 나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비극 『보리스 고두노프』(1831)에서 '3일치의 법칙', 즉 시간·장소·행동의 통일이라는 고전주의 원칙을 과감히 깨뜨렸습니다.

고골, 침묵으로 끝나는 『검열관』

니콜라이 고골이 거대한 오해를 소재로 한 희곡 『검열관』을 무대에 올릴 때, 연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대사도 없이 완전한 정적 속에서 끝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안나 안드레예브나: "그 사람들이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아이고, 세상에!… (문을 열며) 여보! 안토샤! 안토니! (딸에게 재빨리 말하며) 늘 그래, 늘 너만 쫓아다니니까… 이 자식 같으니라고!… 핀은 여기 있고 삼땀은 저기 있고. (창가로 달려가며) 안토네, 어디 가, 어디 가? 뭐? 감찰관이 도착했다고? 수염이 있다고? 어떤 수염 말이야?"

작가들은 연극의 힘을 빌려 당시 러시아 전역을 지배하던 위선과 허세를 신랄하게 고발했습니다. 실제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쓴 가면은 러시아 귀족 사회의 실상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마르가리토프: "잘 가거라, 내 사랑아. (류드밀라에게 열쇠를 건네며) 여기 열쇠가 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가져가고 여기 두지 마라. 내 서랍에는 귀중한 물건들이 들어 있는데, 나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굶주림의 나라에 산다. 사람들은 간신히 손에 쥔 빵 한 조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다."

오스트롭스키와 리얼리즘의 등장

19세기 후반 러시아 연극은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에 의해 주도됩니다. 리얼리즘 정신에 깊이 젖어 있던 이 극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검열에 걸려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러시아 상인 계층을 무대 위에 등장시켰으며, 그들의 언어를 충실하게 재현함으로써 연극에 생생한 현실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체호프, 세계적 극작가의 탄생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안톤 체호프입니다. 그는 세계적 차원의 명성을 얻은 가장 유명한 러시아 극작가로 남아 있습니다. 20세기의 여명기에 활동한 체호프는 인간,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의 불행을 아픔을 담아 그려내는 참여적 작가에 가까웠습니다.

단막극 『곰』(1888)과 『청혼』(1890)은 물론, 과거의 삶과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어제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처지를 놓고 철학적 사색에 잠기는 인물들을 그린 작품들도 오늘날까지 기억됩니다. 『세 자매』(1901)는 갈라졌다가 언제, 혹은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채 재회하는 운명들 속에서 남녀가 겪는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체호프 연극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지점은 바로 결말입니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종결을 제공하지 않으며, 관객들은 미완의 공연 앞에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20세기를 여는 새로운 연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안드레이: "나의 과거는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나는 젊었고, 명랑했고, 총명했다. 아름다운 꿈과 아름다운 생각을 품었고, 나의 현재와 미래는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삶을 시작하자마자 따분하고, 무기력하고, 하찮고,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쓸모없고, 불행해지고 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