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잘게 쪼개진 전나무 아래

작전 개요: 보주 산맥의 겨울전선 돌파 시도

1944년 10월 중순, 프랑스 제1군 예하 제2군단장은 독일군이 겨울 내내 방어선으로 삼으려던 '빈터선(Winterline)'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모젤로트 강 동쪽의 능선들을 신속히 장악한 뒤, 랭코프(Rainkopf)·그랑벵트롱(Grand-Ventron)·드뤼몽(Drumont) 방향으로 전선을 확대하기로 했다. 동시에 슈토람베르(Château-Lambert)~르티요(Le Thillot) 고지에 참호한 적을 정면으로 타격할 계획이었다.

제3알제리보병사단(3e D.I.A.)은 제6모로코티라유연대(6e R.T.M.) 증원을 받아 제라르메르(Gérardmet) 방면에서 테트데세르브(Tête-des-Cerfs)~오뒤팡(Haut-du-Faing)~랭코프 축선으로, 제1기갑사단(1re D.B.)은 제1낙하산슈트르연대(1er R.C.P.)와 아프리카 코만도 그룹과 함께 트라벡생(Travexin)~벵트롱(Ventron)~오데렌(Oderen)과 튀르(Thur) 계곡으로 진격했다.

10월 16일: 오트뒤팡 고지 쟁탈전 개시

10월 16일, 브레스(Bresse) 도로를 기갑부대 통행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바이이(Baillif) 대령이 이끄는 제6모로코티라유연대가 콩니몽(Cornimont)에서 오트뒤팡 고지(해발 1,003m)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 길쭉한 언덕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으며, 모젤로트 강 상류와 브레스, 쑬스(Xoulces) 계곡을 조망하는 요충지였다. 북쪽에는 라투르(de Latour) 대령의 제2모로코타부르연대(2e G.T.M.)가, 남쪽에는 아고스티니(Agostini) 대령의 제3알제리티라유연대(3e R.T.A.)가 측면 엄호에 나섰다. 동시에 제1기갑사단의 돌격보병이 벵트롱 계곡 양쪽에서 공격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모로코 병사들은 오트뒤팡 정상에 도달했고, 코만도 부대는 오트뒤통퇴(Haut-du-Tonteux)를, 낙하산병들은 1011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제4튀니지티라유연대(4e R.T.T.)는 테트뒤롱팡(Tête-du-Rondfaing) 일대에서 진격하지 못한 채 발이 묶였다.

10월 17일: 피로 얼룩진 고지 방어전

이튿날 제6모로코티라유연대가 오트뒤팡 완전 점령을 마쳤으나, 계곡에서는 독일군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놀란 적은 즉시 전열을 정비하고 가용 예비대를 총동원했다. 여기에는 전날까지 카를스루에(Karlsruhe)에 있던 '정치범 대대' 2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명예 회복을 위해 투입됐다. 전 전선에서 독일군의 반격이 쏟아졌으나 모두 격퇴됐다.

하지만 이토록 처참한 충돌은 없었다. 독일군 1개 대대가 병력의 70%를 경사면에 남긴 채 전멸한 반면, 오트뒤팡을 차지한 제6모로코티라유연대도 100여 명의 희생으로 고지를 뺏었으나, 이어진 방어전에서 700명의 전사상자를 내며 '잘게 쪼개진 전나무 숲' 아래에 그들을 묻어야 했다. 독일 포병이 증강되어 숲속에서 쏟아지는 포화는 아직 엄폐호도 파지 못한 공격부대에게 치명적이었다. 오트뒤통퇴 숲에서는 아프리카 코만도 그룹만 92명의 전사자를 냈다.

전략적 결단: 공세 중단과 벨포르 선회

이처럼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오트뒤팡에서 돌파구를 열었음에도, 드 라트르 드 타시니(General de Lattre) 장군은 제2군단의 공세를 중단하고 가용 전력을 신속히 철수시켰다. 보주 산맥 전투는 '결정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마쳤다. 이 전투로 독일군 55,000명과 포병 25개 그룹 이상, 다수의 자주포와 대전차포가 아군 전선에 묶였다. 제2군단 전면에 독일 예비대가 집중된 덕분에 몽벨리아르(Montbéliard) 지역 전선이 약화되었고, 이곳에서 예기치 못한 새로운 타격을 가할 기회가 생겼다.

드 라트르 장군은 제1군단(1er C.A.)에 제5기갑사단(5e D.B.)과 대규모 포병을 증원해 몽벨리아르에서 '교란 작전'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는 필수 탄약 비축이 완료되었기에 가능해졌다. 한편 제2군단에는 '명백히 공격적인 방어' 임무를 부여해, 아군이 여전히 산악 지대에서 결전을 노린다는 독일군의 판단을 유지시켰다. 실제로 독일 사령부는 보주 산맥에서 아군 공세가 임박했다고 판단, 노르웨이에서 불러들인 제269보병사단을 브레스 북쪽의 제3알제리보병사단에 투입했으나, 두 개 사단 포병의 집중 포화에 격파됐다. 제1기갑사단 등이 벨포르 전선으로 이동하기 직전이었다.

11월 3~5일: 로케송 고지 확보와 기만 작전 완성

동시에 미 제7군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진격을 준비하며 우익 엄호를 요청했다. 아군 좌익의 로케송(Rochesson) 고지 탈취가 이 목적에 부합했다. 11월 3일, 제3알제리보병사단(사이리녜(Commander de Sairigné) 소령의 제1외인연대 대대 등 증원)이 공격을 개시했으나 전선 전역에서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독일군은 보주 산맥을 '필수 전선'으로 간주하고 제198·제269사단으로 견고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48시간의 혈전 끝에 아군은 이를 돌파했고, 11월 5일 목표였던 로케송, 메노뤼(Menaurupt) 및 인근 능선을 확보·초과 달성했다. 6일과 7일(두 차례) 세 번의 독일군 반격도 모두 격퇴했다.

이미 극비리에 제2군단 증원부대 전력이 섹터를 떠나 야간에 제1군단 우익 전선, 즉 벨포르 갭(Belfort Gap) 앞으로 이동 중이었다. 보주 산맥 전투의 마지막 막이 내리는 소음 속으로, 내일의 결전을 위한 준비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