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 독일의 앞잡이가 된 소련인들
1941년 10월 6일, 독일 침략군이 소련 브랸스크를 점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 공장의 기술자였던 브로니스와프 카민스키와 지역 기술학교 교사 콘스탄틴 보스코보이니크는 독일 점령당국을 찾아가 스스로 협력을 자처했다.
독일군은 이들을 받아들였고, 곧 200명 규모의 부대가 조직되어 민간인 '치안 유지'와 파르티잔 소탕 임무에 동원되었다. 1942년 초까지 부대 병력은 두 배 이상 불어났고, 보스코보이니크가 사망한 뒤에는 카민스키가 단독 지휘관이 되었다.
파르티잔 소탕전과 잔혹 행위
1942년 봄까지 부대는 1,400명으로 확대되었고, 카민스키와 그의 부하들은 제2기갑군 예하에 배속되어 후방 파르티잔 경계 임무를 맡았다. 카민스키는 소령 계급을 받았다. 같은 해 6월에는 독일군·헝가리군과 함께 반파르티잔 작전 '포겔상(Vogelsang)'에 참여했다.
1942년 가을, 이 부대는 '러시아 인민해방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소련 국적자와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병력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부대에는 소련제 76mm 곡사포 1문과 BT-7 경전차 2대가 지급되었다.
부대는 독일군 군복을 지급받았으며, 1943년 1월까지 거의 12,000명의 병력, 전차와 장갑차 11대, 대공포 중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부대는 극도로 잔혹한 수법으로 반게릴라 작전에 투입되었다.
쿠르스크 패배 이후, 붕괴의 시작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이 패배하자 부대에서는 집단 탈영이 시작되었고, 카민스키에 대한 암살 시도도 있었다. 독일군의 후퇴와 함께 카민스키와 부하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철수했다. 부대 관련자 약 30,000명은 벨로루시 비텝스크 지역으로 옮겨졌다.
그 무렵 이 부대는 브랸스크 지역에서 민간인 1만 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되었다. 그럼에도 탈영은 계속되었다. 카민스키는 부하들과 함께 소련 측으로 넘어가려던 한 장교를 친히 목졸라 죽였다. 1943년 10월까지 부대는 병력의 3분의 2를 상실했다.
친위대(Waffen-SS) 편입
그러나 1944년 1월 초, 히믈러는 카민스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부대 재편을 명령했다. 재편은 벨로루시에서 진행되었고, 소련에 맞서 싸웠던 유사 성격의 부대들이 합류했다.
'카민스키 인민여단'으로 명명된 이 부대는 디를레방거 여단과 함께, 같은 이름의 친위대 장군이 이끄는 '폰 고트베르크 전투단'에 배속되었다. 카민스키가 친위대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며, 이후 벌어진 작전에서 2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이러한 '전과'에 힘입어 부대는 공식적으로 무장친위대 산정 러시아 해방군 돌격여단(RONA)으로 편입되었고, 카민스키는 무장친위대 준장으로 승진했다. 이윽고 부대는 무장친위대 러시아 제1사단으로 개칭되어 폴란드 봉기 진압을 위해 바르샤바로 파견되었다.
바르샤바 봉기: 친위대마저 경멸한 부대
바르샤바에서 이 부대는 친위대조차 혐오감을 느낄 정도의 짓을 저질렀다. 어떤 때는 폴란드인을 공격하는 대신 버려진 집들을 약탈하는 데 열중했다. 마침내 공격이 감행되었을 때에도 폴란드인들에게 손쉽게 격퇴되었다. 무장한 폴란드인에게 할 수 없었던 일을 부대원들은 민간인에게 저질렀다. 학살과 방화, 강간으로 수천 명을 죽인 것이다.
독일군조차 카민스키의 부하들이 약탈과 자기 목숨 보존 외에는 어떤 목적도 이념도 없는 한심한 무리임을 깨달았다. 어느 날 밤, 카민스키의 1개 대대와 포병대가 불과 80명 규모의 폴란드 봉기군 분견대에게 기습을 당했다. 술에 만취해 있던 부대원 대부분은 손쉽게 쓸려나갔다…
생존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카민스키 역시 같은 시점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공식적으로 독일군은 폴란드인의 매복으로 전사했다고 발표했지만, 더 이상 쓸모없어진 그를 독일 측이 직접 처형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부대의 최후
지도자의 죽음 이후에도 부대는 명맥을 이어갔고, 나중에는 배반 소련 장군 블라소프의 세력에 합류하며 그 운명을 함께 했다. 전후 미군과 영국군에게 포로가 된 부대원들은 소련 측에 인도되어 처형되었다.
일부는 신분을 숨기며 살았지만, 많은 이들이 1960년대까지도 소련 내에서 색출되어 처형되었다. 1978년에는 여성 대원 안토니나 마카로바가 발견되어 1,000건이 넘는 살인의 책임을 물어 처형되었다.

바르샤바의 카민스키 여단 병력.

카민스키(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