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카시노 전투: 연합군이 풀지 못한 '카시노 문제'

제1낙하산병사단은 1943년을 아드리아해 방면에서 마무리했다. 몽고메리 장군의 영국 제8군이 진격해오자 아풀리아에서 철수한 이 부대는 상그로 강 전선에 자리 잡고 있었다.

후퇴 과정에서 낙하산병들은 하나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했다. 폐허는 수비자에게 훌륭한 엄폐물이 되는 동시에 공격자의 작전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그들은 폐허가 된 마을과 도시를 방어하는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다듬어 나갔다.

오르토나의 교훈, 그리고 잊혀진 교훈

오르토나 전투(1943년 12월 20일~27일)에서 독일 낙하산병들은 건물을 직접 파괴해 스스로 방어용 폐허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전략과 전술적 사고가 빈곤한 덕분에, 그들은 이후 몇 주 동안은 이런 임기응변조차 쓸 필요가 없었다.

처칠은 오르토나가 "우리의 첫 대규모 시가전이었으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평했다. 설령 이 전투에서 진짜 교훈을 얻었더라도(공식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 교훈은 카시노의 '구스타프 라인'에서 벌어진 세 차례의 대규모 전투에서 결코 활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수비자가 공격자의 서투름 덕분에 이토록 많은 이점을 누린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카시노 문제'의 핵심

카시노 전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리리 계곡을 내주지 않고, 로마로 이어지는 6번 국도(비아 카실리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카시노 주변의 언덕들과 도시 자체를 반드시 지켜야 했다.

따라서 연합군이 카시노의 요충적 가치를 무너뜨리려면 독일군을 이 언덕들에서 쫓아내야 했다.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지형상 모든 이점을 쥔 독일군에게 정면 공격을 감행하거나, 아니면 포위 기동을 통해 그들을 강제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달팽이를 깨는 두 가지 방법

이 선택지는 달팽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딜레마와 흡사하다. 대장장이 망치로 통째로 으깨거나, 껍질에서 살점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 연합군은 첫 번째 방법, 즉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 결과 4개월간의 실패 끝에 막대한 손실만 입었을 뿐, 오히려 케셀링 원수의 방어 위치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소방수 역할을 한 낙하산병사단

케셀링은 카시노에서 완전히 정면 방어에 매여 있었고 예비대가 크게 부족한 형편이었다. 특히 1944년 1월 22일 연합군이 후방의 안치오와 네투노에 상륙작전을 감행한 뒤에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는 최정예 사단 가운데 선발된 응급 부대들을 끊임없이 한산한 구역에서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구역으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바로 이런 '막판 역할'을 수행하며 제1낙하산병사단이 제1차 카시노 전투(1944년 1월 17일~2월 18일)에 투입된 것이다.

클라크의 3단계 공격 계획

1월 15일, 독일군의 구스타프 라인으로의 철수가 완료되었다. 마크 클라크 중장의 미 제5군은 제8군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폰 젱거 중장이 지휘하는 독일 제14기갑군단을 공격하고 리리 계곡을 돌파할 준비를 마쳤다.

클라크는 3단계로 구성된 공격 계획을 세웠다. 먼저 독일군 우익(해안 방면)을 공격하고, 이어서 중앙(라피도 강 일대)을, 마지막으로 좌익(리리 강 북쪽의 카시노 고지대)을 공격하는 순서였다. 1단계 공격은 1월 17일 개시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