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몬테카시노 전투: 케셀링의 임시방어와 안치오 상륙 작전

1944년 1월 말, 이탈리아 전선의 흐름은 불과 열흘 만에 케셀링(Kesselring) 원수에게 유리하게 기울었다. 1월 22일 연합군이 감행한 안치오(Anzio) 상륙 작전은 카시노(Cassino) 방면의 독일군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안치오의 상황은 역설적으로 독일군이 카시노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할 여유를 만들어 주었고, 시간 안에 도착해 제44사단을 구한 첫 번째 부대는 하이드리히(Heidrich) 휘하의 낙하산병들이었다.

예상된 상륙, 위기 속의 신속한 대응

케셀링은 배후에서 연합군의 상륙 작전이 벌어질 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22일 라피도(Rapido) 방면의 공격과 연동해 상륙 작전이 실제로 개시되자 그는 순간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럼에도 그의 진가는 언제나처럼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대응에서 드러났고, 여기에 지나치게 신중했던 연합군의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위기는 차츰 수습되었다.

안치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케셀링은 이탈리아 중부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부대를 총동원했다. 보병과 포병, 대공포 대대(포가 있든 없든), 포병 분견대, 정찰 부대, 그리고 사령부 경비와 방어 임무를 담당하던 특수 부대까지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급조된 임시 전투 집단들의 임무는 단 하나, 안치오 교두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슐츠 집단과 게리케 집단

이 병력 가운데에는 낙하산사단 출신의 슐츠(Schulz) 전투 집단이 있었고, 또 하나는 창설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새 낙하산사단에서 나온 게리케(Gericke) 집단이었다.

하인츠 트레트너(Heinz Trettner) 소장이 지휘하는 제4낙하산사단은 1944년 1월에 창설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제1낙하산사단이 거둔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다. 병력은 루프트바페(Luftwaffe) 산하 사단과 지상 조직, 그리고 네덜란드·벨기에·크레타 전역에서 살아남은 참전 용사들로 충원되었다.

안치오 상륙 나흘 전, 발터 게리케(Walter Gericke) 중령은 자신이 지휘하는 최정예 3개 대대를 긴급 차단 임무에 대비해 대기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선견지명 덕분에 사단은 1월 26일에 이미 교두보 서쪽 측면에 진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교두보 밀어내기, 그리고 방어로의 전환

이 사단은 2월 3일부터 시작해 3월 1일까지 이어진, 연합군을 바다로 몰아내려는 격렬한 반격 작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케셀링은 급조된 잡다한 병력만으로는 교두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방어로 전환했다.

주목할 점은 안치오에서의 반격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전황이 이미 갈린 것이었다. 안치오 쪽은 비교적 안정된 것으로 판단된 반면, 카시노 고지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결과 슐츠 집단은 안치오에서 철수하여 카시노 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