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벚꽃'이라 불린 비밀병기…무용지물이 된 일본의 특공기 오카

 벚꽃 이라 불린 비밀병기…무용지물이 된 일본의 특공기 오카

벚꽃처럼 피고 지는 자살 공격기, 오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일본은 운명을 건 최후의 무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바로 요코스카 MXY7 오카(桜花, 벚꽃)라 불리는 인간 유도 비행폭탄입니다. 독일의 V1과 달리 오카는 조종사가 직접 탑승해 목표물에 충돌하는 카미카제(특공) 방식의 무기였습니다. 오카는 1944년 11월 첫 비행에 성공했고, 이듬해 초 실전에 배치되어 총 852대가 생산되었습니다.

뛰어난 성능,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

오카의 성능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수평 비행 시 최고 시속 648km를 낼 수 있었고, 급강하 시에는 시속 900km에 육박하는 속도를 냈습니다. 탑재된 탄두의 무게는 1,200kg에 달했습니다. 다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항속거리가 고작 37km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카는 중형폭격기의 동체 아래에 매달려 목표 지점 부근까지 운반된 뒤 분리·발사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습니다.

오키나와, 첫 실전 투입

오카의 첫 실전 사용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45년 4월 1일, 일본군은 미쓰비시 G4M '베티' 중형폭격기 6대에 오카를 장착해 미군 상륙 함대를 향해 출격시켰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오카 한 대가 전함 '웨스트버지니아'의 16인치 주포 포탑에 명중한 것으로 판정받았지만, 실제로는 전함 근처에 추락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미군 수송선 3척도 피탄했으나 오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가미카제 특공기에 의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출격한 베티 6대 중 단 한 대도 생환하지 못했습니다.

미군의 대응과 일본군의 반격

미군은 곧 오카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습니다. 오카의 사거리 밖에서 전투기를 배치해, 오카가 투하되기 전에 어미 역할을 하는 폭격기를 먼저 격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군은 재도전을 감행했습니다. 4월 9일, 베티 9대가 다시 공격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오카 한 대가 구축함 '아벨레(USS Abele)'에 명중해 선체를 두 동강 내고 즉시 침몰시켰습니다. 또 다른 오카 한 대는 대공포화에 의해 상륙정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공중에서 폭발했지만, 그 충격만으로도 함선에 손상을 입혔습니다. 구축함 '스탠리(USS Stanly)'를 향해 발사된 오카 두 대 중 한 대는 폭발하지 않은 채 선체를 관통해 바다에서 폭발했고, 다른 한 대는 함선 바로 옆에 떨어졌습니다. 이날 일본 폭격기 중 귀환한 것은 단 한 대였습니다.

4월 14일에는 베티 7대가 출격했지만, 오카를 투하하기도 전에 모두 격추당했습니다. 4월 16일에는 6대가 나타나 4대가 격추됐고, 남은 기체가 투하한 오카는 하나도 목표물에 명중하지 못했습니다. 4월 28일에는 베티 4대가 야간 공격을 감행해 단 한 대만 돌아왔지만, 미군 함선에 입힌 피해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저항, 그리고 완전한 실패

5월 4일, 일본군은 다시 베티 7대로 공격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오카가 소해함 '셰이(USS Shea)'의 함교를 강타해 큰 피해와 인명 손실을 안겼습니다. 근처에서 폭발한 오카의 영향으로 호위함 '게이어티(USS Gayety)'도 피해를 입었으며, 구축함 '해들리(USS Hadley)'는 더욱 불운하게도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당했습니다.

5월 25일, 일본군은 베티 11대를 동원한 최대 규모의 공격을 감행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작전 수행 없이 기지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6월 22일에는 베티 6대가 마지막 오카 공격을 감행했지만, 미군 함선에 명중한 것은 없었고 폭격기 4대가 추가로 격추당했습니다.

결국 일본의 비밀병기 오카는 미군의 유연한 대응과 방어 전술 변화 앞에서 아무런 의미 있는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화려한 이름 '벚꽃'과 달리, 이 무기는 전세를 뒤바꾸지 못한 채 스러져갔습니다.

 벚꽃 이라 불린 비밀병기…무용지물이 된 일본의 특공기 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