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위르겐 폰 아르님(Jürgen von Arnim): 아프리카 전선의 마지막 독일 지휘관

위르겐 폰 아르님(Jürgen von Arnim): 아프리카 전선의 마지막 독일 지휘관

귀족 가문 출신의 군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위르겐 폰 아르님(Jürgen von Arnim)은 오랜 군사 전통을 지닌 구(舊)귀족 가문 출신의 25세 청년 장교였다. 그는 실전에서 공을 세워 대위 계급장을 달았으며, 제국 근위대에서 복무했다. 전통적인 장교다운 품격과 강직한 인상을 지닌 그는, 베르사유 조약이 허용한 10만 명 규모의 국방군(라이히스베어)에 선발되는 데 성공했다.

전쟁 중에는 부대 지휘관으로, 이후에는 참모 장교로서 경력을 쌓았다.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한 지 몇 달 만에 대령으로 진급했고, 그의 승진 행보는 순탄하게 이어져 1938년 소장, 1939년 중장에 올랐다.

동부 전선의 기갑전 전문가

전쟁을 준비하던 새로운 독일군에는 유능한 지휘관이 절실했다. 폰 아르님은 동부 전선에서 군단을 이끌고 소련군과 맞섰으며, 전차 부대 운용과 여러 병과 간의 협동 작전에 능한 기갑전 전문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튀니지, 최후의 임무

1942년 11월 8일 영미 연합군이 모로코와 알제리에 상륙하자(토치 작전), 독일 지도부는 로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후방에서 포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신속히 대응해야 했다. 튀니지에서 창설되던 이탈리아-독일 제5군에는 실패와 좌절에 흔들리지 않는 일류 지휘관이 필요했고, 폰 아르님은 이 희생적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비제르트와 튀니스로 향하는 연합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재앙 직전에 몰렸던 전황을 간신히 되돌려 놓았다.

파이드 고개의 마지막 승리

재편성된 프랑스군의 공격이 아르님의 군대와 로멜 군단 사이의 연결을 끊을 위협이 되면서, 반격이 불가피해졌다. 1943년 1월 30일, 히틀러 권력 장악 10주년을 맞은 날 폰 아르님은 파이드 고개(Faïd Pass) 전투에서 독일군이 아프리카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 중 하나를 장식했다.

그러나 이후의 반격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사막의 기갑 부대는 카세린 고개도 메데닌도 되찾지 못했다. 1943년 3월 로멜은 유럽으로 귀환 명령을 받았고, 폰 아르님은 아프리카 추축군의 마지막 총사령관이 되었다.

포위된 끝에서의 항복

마레트 방어선은 함락되었고, 그의 손에 남은 병력은 10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바다를 등지고 포위된 가운데 마지막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1943년 5월 7일 연합군이 튀니스와 비제르트를 함락시켰고, 5일 뒤인 5월 12일 폰 아르님은 포로가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마지막 독일군 지휘관 폰 아르님은 1962년 독일 바트 빌둥겐(Bad Wildungen)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