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

플라잉 타이거스란?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한 미국인 조종사 부대의 별명입니다. 공식 명칭은 '제1미국 의용군(1st American Volunteer Group, AVG)'이며, 이들은 중일전쟁과 버마 전역에 참전했고, 전쟁 중 미국 육군 항공군에 통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

역사

장제스의 군사 고문이었던 클레어 리 셴놀트(Claire Lee Chennault)는 1938년부터 미국 육군 항공단을 본떠 중국 정부를 지원할 공군 창설을 구상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중립법에 따르면 이러한 작전은 불법이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40~1941년 겨울, 셴놀트는 커티스 P-40B 전투기 약 100대를 중국으로 반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미국 의회가 무기대여법(Lend-Lease)을 승인하기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셴놀트는 또한 조종사 100명과 기술자 200명을 모집했습니다. 조종사 중 60명은 미 해병대나 미 해군 출신이었고, 나머지 40명은 미 육군 항공단 출신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

부대원들의 급여는 민간 군사회사인 센트럴 에어크래프트 매뉴팩처링 컴퍼니(Central Aircraft Manufacturing Company)가 지급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이 부대는 용병 부대였습니다. 다만 '의용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다만 서면화된 행정명령이 실제로 서명된 적이 없는 등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지원이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창설

민간 여권을 소지한 모집자들은 버마를 경유해 도웅(Taungû)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소련은 '소련 의용 비행대(Soviet Volunteer Group)'라는 이름으로 전투기 부대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련-일본 불가침조약 체결 이후 소련 조종사들이 철수하면서, 셴놀트 부대의 지원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미국 비행대는 1941년부터 장제스의 직접 명령으로 공식 창설된 '제1미국 의용군'이라는 명칭을 갖게 됩니다.

부대의 별명 '플라잉 타이거스'는 조종사 에릭 실링(Eric Shilling)이 자신의 기체 기수에 처음 그린 벌어진 상어 입 그림에서 유래합니다. 이 그림 자체는 독일 루프트바페 하이피쉬그루페(Haifischgruppe, '상어 부대', II/ZG 76) 조종사들이 메서슈미트 Bf 110에 그린 도색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

조종사들은 1941년 여름부터 훈련을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훗날 유명해지는 그레고리 보잉턴(Gregory Boyington)도 있었지만 아직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인원이 많았습니다. 초창기 부대는 중국 남부 쿤밍에 주둔하며 버마의 전략적 보급 거점 방어 임무를 맡았습니다. 셴놀트는 록히드 허드슨과 더글러스 DB-7로 무장한 '제2미국 의용군'도 새롭게 편성하고 세 번째 부대 창설까지 계획했으나, 진주만 공격과 미국의 공식적인 참전으로 이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첫 번째' 미국 의용군이라는 공식 명칭을 지녔음에도,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것은 플라잉 타이거스가 유일했습니다.

미국 의용군의 첫 전투는 1941년 12월 20일 쿤밍에서 벌어졌으며, 일본군의 공습을 성공적으로 요격하며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후 플라잉 타이거스는 버마 전역에 참전하여, 양곤 방어전에서 일본기 50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미국 육군 항공군으로의 흡수

1942년 봄부터 미국 육군 항공군(USAAF)이 공식적으로 부대를 인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에 복귀한 셴놀트는 중국 항공 특임대(China Air Task Force)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1942년 7월 4일, 미국 의용군은 공식 해체되고 중국 특임대 산하 제23전투비행단(23d Fighter Group)으로 대체되었습니다. AVG 출신 조종사 5명, 장교 5명, 기술자 19명이 제23전투비행단에 합류했으며, 나머지 인원은 다른 군 부대로 배속되거나 아시아의 항공 운송 업무를 선택했고, 일부는 민간인으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직 플라잉 타이거스 대원들은 셴놀트가 1946년에 설립한 CAT(민항공운송, Civil Air Transport)에 고용되었습니다. '플라잉 타이거 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 항공사는 CIA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특히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지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후 Air America와 합병하며 CIA와의 연계를 이어갔습니다.

초대 플라잉 타이거스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23전투비행단은 AVG 기체의 엠블럼과 '상어 입' 도색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이를 허락받은 유일한 미국 공군 부대가 되었습니다. 중국 특임대는 1943년 3월 미 제14항공군(14th USAAF)으로 교체되었고, 이 부대 역시 엠블럼의 변형을 사용하며 별명을 물려받았습니다.

1992년, 부대 해체 50주기를 앞두고 플라잉 타이거스 대원들은 모두 소급하여 미국 공군 참전 용사로 편입되었습니다. 1996년에는 생존자들이 조종사에게는 우수비행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 지상 요원에게는 동성훈장(Bronze Star)을 수여받았습니다.

짧은 존속 기간(7개월)에도 불구하고, 플라잉 타이거스 비행대는 미국 군사 항공 역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들을 회고하는 자료들이 많으며, 미 제14항공군은 여전히 호랑이를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고, 제23전투비행단 역시 '플라잉 타이거스' 문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플라잉 타이거스'라는 명칭은 오늘날에도 맥락에 따라 제23전투비행단 또는 미 제14항공군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이 별명은 제1미국 의용군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