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소련 이민의 세 물결: 혁명과 전쟁을 건넌 망명자들의 발자취

세 차례에 걸친 이민의 물결

러시아에서 사람들이 처음 대규모로 떠난 시기는 1917년이다. 혁명이 일어나 온 나라가 혼돈에 빠졌고,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거나 목숨의 위협을 느낀 수많은 이들이 국경을 넘었다. 이것이 이른바 제1차 이민 물결로, 귀족·군인·지식인 등 약 100만~2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두 번째 물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나타났다. 포로, 강제 동원자, 피난민 등 수십만 명의 소련 시민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조국을 등지고 떠났다.

세 번째 물결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뒤 소련 당국이 유대계 시민의 이스라엘 이주를 허용하면서, 이 시기에만 약 25만 명의 러시아 유대인이 소련을 떠날 수 있었다.

이민자인가, 추방자인가

흔히 우리는 이들을 '이민자'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소련 망명자', 즉 추방자에 가깝다. 일부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떠났지만, 다른 이들은 분명한 위협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곧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들이 실제로 목격한 것은 소련의 팽창과 볼셰비키 정권의 장기 집권이었다. 임시 귀환이라는 기대는 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

새로운 언어를 택한 작가들

프랑스어로 글을 쓴 프랑코폰 작가들, 즉 엘자 트리올레, 조제프 케셀, 나탈리 사로트는 피난처가 된 나라의 언어를 받아들인 러시아 이민 작가들을 대표한다. 트리올레는 1944년 여성 최초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고, 케셀은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벨 드 주르』의 저자이며, 사로트는 누보 로망의 선구자로 꼽힌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역시 새로운 언어로 갈아탄 대표적인 이민 작가다. 러시아어 독자층을 더 이상 찾기 어렵게 되자 그는 『롤리타』를 영어로 집필했고, 이 작품은 세계 문학사에 남는 고전이 되었다. 당시 이민자 독자층은 자신들의 작가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만큼 여유가 없었기에,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의 전환은 문학적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국경 너머의 러시아

이들은 흔히 '국경 너머의 러시아'라 불린다. 그들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이 볼셰비키 혁명 이전의 러시아 문화와 정교회 신앙을 그대로 지니고 나왔다고 확신했다. 고향을 잃은 대신, 과거의 러시아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공동체가 망명지 안에 세워진 것이다.

한편 보리스 자이쳅처럼 소련에 남아 볼셰비즘에 맞서 싸우고자 했던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조국 밖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선택은 당시 수많은 지식인이 마주했던 비극적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